1970, 80년대 드라마에서 이방원은 ‘젠틀맨’이다. KBS ‘세종대왕’(1973년)에서 맏아들인 양녕대군의 일탈에 애달파하는 아버지의 모습, KBS ‘황희 정승’(1976년)에서는 신하들을 죽이라 명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인간적 면모가 부각된다. MBC ‘추동궁 마마’(1983년) 속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앞두고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고 밤잠을 설치며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이방원의 모습은 남성우, 이정길 등 당시 40대 초반의 신사 이미지를 가진 배우와 어우러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당시 드라마는 세종대왕과 황희가 활약한 조선 초기 태평성대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이방원의 잔혹한 이미지는 순화됐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작품 속 이방원은 본격적으로 강렬함을 보여준다. KBS ‘용의 눈물’(1996년)에서 배우 유동근이 선보인 이방원이 대표적이다. 1차 왕자의 난을 앞두고 정도전에게 “이 나라는 봉화 정씨의 나라가 아니다”라 경고하고, 왕권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은 인척이라도 과감히 정리한다. KBS ‘대왕 세종’(2008년)의 김영철, SBS ‘뿌리깊은 나무’(2011년)의 백윤식 등 당시 40∼60대 선 굵은 배우들도 냉혹한 권력자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이방원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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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희 방송칼럼니스트는 “최근 정치나 사회 현실의 답답함을 느낀 시청자들이 머리가 뛰어난 현실주의자이자 빠른 실행력을 가진 이방원을 선호하는 듯하다”며 “여기에 인간적으로도 멋있고 섹시한 모습을 덧씌워 매력적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