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도쿄특파원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는 일본 사회의 세대교체가 대거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10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가장 활력이 넘친다던 단카이(團塊) 세대가 60대 중후반을 맞아 일선에서 퇴장하고 있다. 이들은 1947∼1951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 매년 200만 명씩, 5년간 1000만 인구가 덩어리져 있다. 일본의 발전과 동시에 성장한 덕에 아무 걱정 없이 취직해 평생직장을 누리며 재산을 모은 복 받은 세대라 할 수 있다. 은퇴 후에는 각종 취미활동과 문화활동으로 고급 소비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들이 대거 연금생활자의 대열에 들어가니 사회는 부담이 크다. 젊은 세대는 노인들이 자신들의 몫을 다 가져간다며 곱지 않은 시선이다. ‘먹튀 세대’ ‘혐로(嫌老) 사회’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린다. 약자는 먹히고 강자는 먹는다는 뜻의 ‘약육강식’을 패러디한 ‘약육노식(若肉老食)’이란 말마저 나온다.
이런 현실에서는 세대 간 격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현재 70세인 노인은 복지를 통해 평생 낸 것보다 평균 2150만 엔(약 2억3400만 원)을 더 돌려받지만 20세 청년은 평생 4500만 엔(약 4억9000만 원)을 손해 본다는 통계도 있다. 일본의 미래를 담보할 출산율을 높이려면 예산이 필요한데 노인복지 때문에 재원이 없다는 정부의 설명은 분노를 부추긴다. 실제로 일본에서 고령자에게 지급되는 사회보장액이 연간 76조 엔(약 828조 원)인데 아동수당 등 가족에 대한 급부액은 5조5000억 엔(약 60조 원)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가 노인복지에만 치중하는 이유는 일종의 노인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즉 노인층이 가장 표가 많고 투표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혐로(嫌老)사회를 넘어서’라는 책을 펴낸 일본의 유명 작가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寬之)는 “유럽 등지에서 보이는 난민이나 이민에 대한 증오가 일본에서는 노인 혐오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노인들 스스로 ‘혐오스러운 노인’을 넘어서 ‘현명한 노인(賢老)’이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84세인 그는 한때 스포츠카 마니아였지만 65세에 운전 기술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고는 면허증을 반납했다. 소싯적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멋쟁이였지만 최근 10년간 새 옷을 사지 않았다고 말한다. 의료보험이나 사회복지도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스스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기심을 버리고 가진 것을 나눈다는 자세가 본인도 세상도 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서영아 도쿄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