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사회부
11일 약 3년 만에 취재차 다시 찾은 CIQ의 광경은 그때와 확연하게 달랐다. 눈물의 상봉도, 짐을 옮겨 싣는 분주함도 볼 수 없었다. 이날 오후 5시경 북한의 추방 조치 이후 약 5시간 만에 귀환한 입주 기업인들은 개인 소지품만 겨우 갖고 나왔다. 트럭의 짐칸은 텅 비어 있었다. 이들을 마중 나온 사람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입주 기업인들에게는 전과 달리 철수 준비는커녕 최소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10일 오후 4시경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공장을 돌리던 입주 기업인들은 24시간 뒤 창고에 수북하게 쌓인 제품을 남겨 두고 다급하게 쫓겨나야 했다. 같은 시간 남한에 있던 직원들은 이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까지 만난 입주 기업 대표나 근로자들은 하나같이 ‘자식처럼 키운 곳’이라며 회사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중에는 출경 예정일에 차량이 뒤집히는 사고를 당했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고 그대로 개성공단에 간 직원도 있었다. 휴대전화 벨소리나 통화연결음을 북한 가요로 해 둔 이도 적지 않았다. 입주 기업인과 직원들이 개성공단 폐쇄로 겪은 상실감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울 만큼 커 보였다.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 교류의 상징이자 마지막 보루였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은 정치적 리스크만 빼면 해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적의 생산기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컸고 결국 다시 문이 닫혔다. 11일 밤 12시 무렵 개성공단에 남아 있던 우리 인원이 전원 철수한 직후 전기와 수도도 모두 끊겼다. 남다른 사명감으로 공단을 일군 기업인들과 남북 관계의 앞날도 불 꺼진 개성공단처럼 다시 암흑 속으로 빠져드는 건 아닌지 착잡함이 밀려 왔다.
김호경·사회부 whalefish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