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美대선 뉴햄프셔 경선]민주 샌더스, 힐러리에 완승
9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경선) 투표장 중 한 곳인 맨체스터 메모리얼 고교.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5)을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있던 뉴햄프셔대 1학년생 세라 메이어스 씨는 ‘왜 샌더스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메이어스 씨는 “힐러리가 샌더스는 외교정책을 모른다고 공격하는데 우리와 별 상관없는 일이다. 샌더스는 피부에 와 닿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공립대학 학비 무료화, 젊은이 일자리 확충 등 ‘화끈한’ 공약은 젊은 민심을 무섭게 파고들고 있다. 월가 은행 수익에 높은 세금을 매겨 매년 750억 달러(약 89조8000억 원)의 재원을 만들면 공립대 등록금을 전액 면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4일 뉴햄프셔 타운홀 미팅에서도 “북유럽의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는 공립대 학비가 무료이고 칠레도 내년부터 이 정책을 시행한다. 이런 공약은 사회주의도 아니고 급진적인 것도 아니다. 안 하는 게 이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헤지펀드 탈세를 조사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이 돈을 대학 졸업 후 일자리 걱정이 많은 젊은이들을 위해 매년 평균 100만 개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겠다는 것이다.
평소 “슈퍼팩(대형 정치자금 후원 조직) 돈은 한 푼도 받지 않겠다”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비판해 온 그는 이날 축하 집회에서도 “나는 지금까지 370만 명의 소액 후원자가 낸 1인당 평균 27달러(약 3만 원) 돈으로 선거를 치러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가의 거액 후원을 받아 온 클린턴을 서민들이 모아 준 ‘27달러의 기적’으로 눌렀다는 것이다. 비영리 정치자금 감시단체 CRP에 따르면 클린턴은 지난달까지 월가에서 1730만 달러(약 207억6000만 원)나 되는 거액을 받았지만 샌더스는 5만5000달러(약 6600만 원)를 받는 데 그쳤다.
그러나 보수층은 물론이고 민주당 일각에서도 ‘아이디어는 좋지만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요 재원을 월가 은행에 대한 과세에 의존하고 있어 집권 후엔 임기 내내 ‘월가 등 기득권과의 전쟁’만 벌이겠다는 것이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샌더스가 뉴햄프셔를 넘어 클린턴을 꺾으려면 보다 많은 국민을 납득시킬 로드맵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샌더스 주가가 오르자 그와 코드가 맞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67·매사추세츠)도 주목받고 있다. 워런은 소비자운동을 해온 진보 진영 정치인으로 ‘월가의 보안관’이란 별명대로 월가 비판론자이다. 민주당 내 여성 상원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클린턴을 공개 지지하지 않았다.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경우 ‘부통령감으로 워런 말고 누가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샌더스-워런’ 조합은 월가로선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