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는 1·4후퇴 직전인 1950년 12월 단신으로 월남했다. 그때 23세, 어머니는 60세. 구월산의 인민군이 밤이면 마을로 내려왔다. 그때마다 젊은이는 몸을 숨겼다. 그 와중에 “한 이틀이면…” 하고 떠난 것이 생이별이 됐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배 타고 연평도로 가서 미군 상륙함(LST)에 몸을 싣고 “하늘로 가는지 어디론지도 모르고 부산까지 왔다”고 했다. 허허바다 위에서 이름을 본명 복희 대신 바다 해(海)로 고쳤다.
▷살아 계시면 128세, 8년 전까진 노모의 생사를 몰라 차례도 지내지 않았다. 이번 설에는 “꿈에라도 오실까” 목메어 불러봤다. 2년 전 송해 선생과 함께한 저녁자리에서 고향 연백 얘기가 나왔다. 술이 몇 순배 돌던 중 이상한 느낌에 힐끔 봤다.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작년 3월 그가 녹음한 ‘유랑청춘’ 가사가 애절하다. ‘눈물어린 툇마루에 손 흔들던 어머니, 하늘마저 어두워진 나무리 벌판아, 길 떠나는 우리 아들 조심하거라, 그 소리 아득하니 벌써 칠십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엄마여…’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