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훈 정치부 차장
사연은 이랬다. 당시 문화공보부 산하 한국공연윤리위원회(공윤)는 ‘시대유감’을 두고 “가사가 부정적이고 현실 전복적”이라며 수정을 요구했다. ‘시대유감’ 가사 중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네”라는 내용이 반(反)사회적이라는 거다. 서태지는 이를 거부한 채 가사를 들어냈다.
후폭풍은 거셌다. 서태지 팬 중심으로 사전심의 철폐 서명운동이 확산됐다. 결국 이듬해 6월 7일 공윤의 사전심의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해 1월 해체됐지만 ‘시대유감’은 사전심의제 폐지 직후인 6월 25일 싱글앨범으로 빛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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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지만 ‘시대유감’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이어졌다. 모두 사전에 예방할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은 탓이다.
국민은 불안한데 국회는 당리당략에만 매달리고 있다. 입법 기능이 마비된 식물국회다. 거대 여당은 4·13총선을 앞두고 진흙탕 싸움 중이다. 당내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계 간 공천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친박 핵심 최경환 의원은 경제부총리에서 물러난 뒤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 감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연일 물갈이 대상 의원들을 향해 “반성하라”고 호통을 치고 있다. ‘대통령 발목을 잡았으니 공천은 꿈도 꾸지 말라’는 투다. 겉으로는 “당직을 맡지 않고 백의종군하겠다”면서도 실제로는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를 오가는 ‘진박 전선’ 구축 행보다.
계파 갈등 속에 김무성 대표의 ‘통합 리더십’도 길을 잃었다. ‘권력자’ 발언으로 청와대와 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부각시켰지만 최근 비박계 모임에선 “총선에서 살아 돌아오라”고 했다. 사실상 편 가르기에 동참한 모양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상향식 공천이 비박계 현역 의원 챙겨주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야당도 한심하긴 매한가지다.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뒤집었다.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일명 원샷법), 북한인권법에 선거구 획정을 담은 공직선거법까지 함께 처리하자고 요구한 거다. 여당에 무조건 딴죽을 거는 ‘운동권 정치’다. 정치 금도마저 사라졌다. 상대 진영의 속살을 알고 있을 법한 인사들까지 무차별 영입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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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훈 정치부 차장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