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훈 사회부 차장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국무총리보다도 좋다는 국회의원. 어떤 매력이 숨어있는 걸까. 헌법상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보장받아서? 국회 공무수행 출장비로 KTX를 타고 공항 귀빈실을 통해 간편하게 출국하는 특혜가 있어서일까. 이런 공식 혜택들도 인기 요인이 될 수 있지만 본질은 아닌 것 같다.
국회의원이 다른 요직과 비교되는 결정적인 차이가 한 가지 있다. ‘일을 안 해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고 실적 부담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장관만 해도 결정하고 집행해야 할 업무가 산적해 있고, 청와대와 대통령으로부터 정책성과를 평가받는다. 메르스 사태처럼 예기치 못한 대형 재난이라도 터지면 사안이 끝날 때까지 비상근무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대처를 못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자리에서 쫓겨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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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최악이고 안보환경이 급변하는데도 국회가 놀기만 하는 것은 실적을 내지 않아도 되는 직업 자체의 속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법을 고치거나 만드는 게 국회의원의 본업이지만 법률 제정·개정 실적을 내지 않았다고 자리가 위태로워지거나 월급이 깎이는 일은 없다. 중요한 법률을 제때 통과시키지 않아 여론이 들끓는다고 해서 사퇴를 걱정하는 국회의원도 없다. 세상이 망가지건 말건 국회의원 임기 4년간은 아무것도 안 해도 급여와 자리가 완벽히 보장된다.
그 이전도 그랬지만 국회선진화법이 지배한 19대 국회는 건국 이후 최악의 ‘노는 국회’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한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국회가 법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국정이 돌아갈 수 없다. 대통령과 정부가 긴요한 정책을 추진하려 해도 국회가 노는 이상 모두 공염불에 불과하다.
노는 와중에 일부 국회의원은 범죄까지 손을 뻗어 국민을 열 받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무소속 박기춘 의원이 분양대행업체 대표로부터 2억78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1심에서 징역 1년 4개월의 실형에 처해져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속수무책(束手無策). 손이 묶인 듯 꼼짝달싹하지 못한다는 뜻인데, 심각한 위기에 처했지만 답답한 상황만 지속되는 한국의 지금 분위기와 딱 들어맞는 사자성어다. 큰 재앙이 닥쳐도 대책을 만들어 열심히 하다 보면 희망이 보이고 결국에는 위기를 돌파해 나갈 수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다. 없는 법이라도 만들어 경제 활성화를 도와야 할 국회가 정책을 꽁꽁 묶어놓고 국민에게 약을 올리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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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사회부 차장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