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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살다]모델하우스와 능동적 집짓기의 차이

입력 | 2016-02-03 03:00:00


경북 안동시에 위치한 한옥 심원정사(1992년 건축). 염기동 한옥전문사진가 제공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안동 도산에 서당을 지을 터전을 정하고 건축 계획을 세운 이듬해 1558년, 퇴계는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되어 서울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때 퇴계는 안동에 있는 지인 이문량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그 도본이 너무 엉성하여 쓸 수 없기에 이제 새로 고쳐 그린 것을 보냅니다. … 당(堂)은 정남향으로 하여 예를 행하기에 편리하도록 하고, 재(齋)는 서쪽 정원을 마주 보도록 하여 아늑한 정취가 있도록 하고자 하며 그 나머지 방, 부엌, 곳집, 대문, 창 등도 모두 그 뜻이 있는 것이니 그 구조가 바뀔까 염려됩니다.”

퇴계가 그토록 정성들여 지은 도산서당은 온돌방 한 칸, 마루 한 칸, 부엌이 전부였다. 하지만 퇴계는 그것마저도 “장황하고 고대하게 되었다”며 부끄러워했다고 제자 이덕홍은 기록했다. 이렇게 지어진 도산서당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선비의 엄격한 자기 수양과 학문 연마를 위한 공간의 본보기로 인식되고 있다.

1992년 안동 하회마을 초입에 새로 한옥이 지어졌다. 당호(堂號)는 심원정사(尋原精舍). 찾을 심(尋) 근본 원(原)이다. 일찍 외지로 분가해 나간 후손이 자신의 근본을 찾아 돌아왔음을 뜻하며, 그 상징이 되는 터전을 우리 건축의 근본인 한옥으로 실현한 것이다. 한옥 신축이 드물던 시기에 한옥을 지은 마음가짐을 헤아려봄 직하다.

집짓기에 들인 정성은 대단해서 집의 배치며, 마당에 놓이는 작은 돌의 위치며, 높이에 이르기까지 조화로움에 세세히 마음을 썼다. 현장에 대장간을 설치할 정도로 전통기법을 지키려 애쓰면서도 난방 보일러며 화장실과 부엌을 현대식으로 설치해 시대와의 조화도 허술히 하지 않았다.

안주인 윤용숙 여사는 생활의 근거가 서울임에도 현장 감독을 자임하며 공사일지를 썼는데, 그 내용을 보면 그녀가 들인 정성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세기문엔 가죽끈이나 한지를 꼬아 끼어 질끈 동여매 쓰고 있다. 거기에 매듭단추를 맺어서 달았더니 여인의 뛰어난 솜씨가 한결 돋보인다.’ 이 기록은 ‘어머니가 지은 한옥’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한옥 관련 정보에 목말랐던 이들에게 비전(秘傳)처럼 귀한 자료가 되어 ‘심원정사’를 더욱 의미 있게 하고 있다.

퇴계와 윤용숙의 집짓기를 돌아보며 집을 짓는 마음의 소중함과 지금 우리의 집짓기를 생각한다.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경험을 갖지 못하고 그저 몇 개의 모델하우스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익숙한 우리다. 살기 위한 집이겠으나, 팔 때에 대한 예측이 살 때의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는 세계에서는 집을 짓는 ‘마음’과 집이라는 공간에서의 ‘삶’ 자체가 존중될 여지는 없다.

그러나 요즘 집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집짓기를 실천한 사례들이 있어 희망을 본다. 경기 용인시의 ‘살구나무집’(건축가 조남호)은 아파트 전문가로 불리는 두 교수가 “현재 우리의 집짓기가 빠뜨리고 있는 것”을 진단하고, 실용적이고 품격 있으면서도 보편적인 삶을 담아낼 대안으로 사회에 제시한 집이다. 또 경기 남양주시의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잔서완석루(殘暑頑石樓)’(건축가 이일호)는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구상을 건축가와 2년간 e메일로 주고받으며 다듬은 후, 자신과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에 대한 배려까지 담아 지은 집이다.

이 집짓기의 기록들은 각각 ‘아파트와 바꾼 집’과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들의 진솔하고 현실적이면서도 정성이 담긴 탐색의 자세는 큰 울림을 주고 있는데, 이는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과 실력을 겸비한 건축가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두 집의 건축주와 건축가들 모두 한옥의 공간개념이며 건축정신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것이 책 전반에 드러나 있다. ‘잔서완석루’는 ‘시멘트로 지은 한옥’이라고 주인 스스로 이르고 있으니, 이들이 정성을 다해 지은 집이, 우리의 보편적인 삶을 담아낸 조화롭고 균형 잡힌, 이 시대의 명작이 된 것은 우연일까? ‘마음으로 지은’ 더 많은 주택 명작이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