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톰 미첼 지음·박여진 옮김/352쪽·1만5000원/21세기북스 아르헨티나에 살던 영국인 저자, 우연히 죽을 뻔한 펭귄 구해주고 집에 데려와 함께 생활하게 돼 우울한 사회 살던 남미 사람들과 펭귄 ‘후안’의 특별한 우정 그려
저자 톰 미첼이 자신의 애견과 함께 영국의 한 해변에 서 있다. 21세기북스 제공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영국인 저자는 모험심 풍부했던 20대 초반을 회상한다. 넓은 세상이 궁금했던 젊은이는 아르헨티나 기숙학교의 교사 모집공고를 보자마자 우체국으로 달려간다. 한때 전 세계를 주름잡던 영국인의 기질은 역시 남다른가. 영국 식민지였던 뉴질랜드와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스리랑카, 짐바브웨 등에서 살았던 그의 가족내력을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23세 청년은 우루과이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바다에 유출된 기름에 뒤덮여 폐사한 펭귄 무리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녀석을 발견한 저자는 숙소로 데려와 기름때를 벗겨준다. 이후 국경을 넘어 일터인 아르헨티나 기숙학교로 펭귄을 데려오기까지, 할리우드 영화를 뺨칠 정도의 온갖 고난이 청년을 기다리고 있다. 펭귄을 씻기다 심하게 물려 깊은 상처를 입는 건 기본이고, 몇 시간을 타야 하는 버스에서 감춰놓은 펭귄이 실례를 하는 바람에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살아 있는 동물을 몰래 데리고 들어오는 건 중범죄”라고 윽박지르는 아르헨티나 세관원에게 붙들려 곤욕도 치른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1970년대 초반 군부 독재정권이 붕괴된 직후의 혼란스러운 아르헨티나 상황을 보여준다. 테러와 무질서로 점철된 아르헨티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표를 바꿀 정도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현물에 비해 현금 가치를 형편없이 떨어뜨리는 인플레이션의 특성상 부익부 빈익빈은 갈수록 심해졌다. 월급으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야 하는 기숙학교 직원들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당시 교사들은 월급을 받자마자 시장으로 달려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사들였다. 현금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하나라도 물건을 더 사서 지인들끼리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서였다.
고향 영국으로 돌아갔던 저자가 40년 만에 아르헨티나를 다시 찾아가 해양 동물원 ‘문도 마리노’에서 들은 펭귄의 생태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사육사는 “펭귄은 무리 동물이기 때문에 한 마리만 방사하면 결국 살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후안을 구한 뒤 다른 해변에 놓아주려고 했지만 후안은 끝까지 자신을 따라왔다. 그때 후안의 행동이 저자에겐 오랜 세월 의문이었지만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마침내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제자리에 딱 맞게 자리를 잡은 기분이었다”고 썼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