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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의 따뜻한 동행]2015년이여 그러면 안녕

입력 | 2015-12-31 03:00:00


추운 날 꼭두새벽에 집을 나섰다. 1년 52주 가운데 51주를 다 보내 놓고 항상 마지막 주에 이르러서야 바빠진다. 건강검진 숙제를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으나 예약이 만료되었다는 것. 다음 날 아침 일찍 오면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간호사의 귀띔에 새벽길을 택한 것이다. 해마다 마감에 쫓겨 검진을 받으면서 내년에는 서둘러야지 결심하지만 올해 역시 또 같은 결심을 했다. “건강검진을 받으려면 괜히 마음이 으스스한데 내년에는 꼭 따듯한 계절에 해야지.”

마감에 대기 위해 늘 숨이 차지만 마감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루의 마감, 한 해의 마감, 그리고 언젠가는 생(生)의 마감까지, 끝이 있다는 게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만약 이 하루가 계속된다면, 만약 우리의 생이 끝나지 않는다면, 엿가락처럼 질질 늘어지는 시간의 무게를 어찌 감당할까. 하루가 귀하지도 않을 것이고 살아있음이 감동일 것도 없을 것이다.

승리의 오만에 취했을 때 겸손을 일깨워주고, 좌절의 늪에 빠졌을 때 희망을 주는 한마디를 묻자 솔로몬이 답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바로 모든 일에는 ‘끝’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승리의 기쁨에도 좌절의 괴로움에도 끝이 있으니 오늘 그 속에 있다고 한들 너무 그것에 취해 기뻐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말을 한 솔로몬도, 과거에 존재한 그 숱한 사람들의 시간도 지나갔고, 그리고 지금 우리의 시간도 흘러가고 있다.

올 크리스마스에 우연히 본 ‘줄리아나의 크리스마스’라는 방송에서 난치병을 앓고 있는 여섯 살 줄리아나의 부모는 이런 말을 했다. “올해도 줄리아나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어 행복해요. 우리의 소망은 내년 크리스마스도 줄리아나와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함께 있음 자체가 최고의 소망이고 행복인 줄리아나 가족의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지금 함께 있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순간순간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고 있으므로.

올해도 기쁜 일과 가슴 아픈 일,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래서 2015년의 마지막 날에 흔쾌하게 인사한다. “2015년이여, 그러면 안녕”이라고. 이 또한 지나가리니 우리가 내년에도, 또한 그 후에도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아니라면 이렇게 말하리라. “살아 있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