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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정명훈의 수난시대

입력 | 2015-12-31 03:00:00


‘정명훈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정명훈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활약하는 두 한국인 음악가 정명훈과 백건우의 인간적 정감이 자주 비교된다. 백건우가 100점이라면 정명훈은 글쎄,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럼에도 정명훈은 연주가 있을 때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찾아가 듣고 싶은 지휘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 씨가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와 빚은 갈등에 대해 어제 ‘문명사회에서 용납하지 못할 박해를 당했다’며 서울시향 예술감독직을 사임했다.

▷하루 전날 서울시향 이사회는 정 씨와의 재계약을 보류했다. 정 씨의 부인 구순열 씨가 박 전 대표 음해를 직접 지시한 정황을 검경이 포착했다는 보도에 따른 것이다. 정 씨가 인심을 얻지 못한 데는 가족과 인척이 설친 탓도 있다. 구 씨는 정트리오의 멤버이자 정 씨의 누나인 첼리스트 정명화 씨의 시누이다. 구 씨가 겹사돈 관계에서 오는 남다른 영향력으로 매니저 일에 개입하는 데다 인척들이 부수적인 업무를 편의적으로 맡았다고 한다.

▷동아시아 출신의 세계적 마에스트로로는 일본의 오자와 세이지와 한국의 정명훈을 두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오자와의 음악은 유려하지만 디테일에 집착하는 반면 정 씨의 음악은 선이 굵고 구조가 강하다. 그럼에도 오자와가 세계적인 지휘자로 더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오자와에게는 일본이라는 클래식 음악 강국의 후원이 있었다. 정 씨에 대한 한국의 후원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오자와 같은 겸손한 인간적 매력도 정 씨에게선 잘 보이지 않는다.

▷정 씨가 박 전 대표에게 억울하게 걸려든 측면도 없지 않다. 본래 서울시향 갈등은 박 전 대표와 사무국 소속 직원 사이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교묘하게 대표와 예술감독의 불화로 갈등의 프레임을 바꿔 시향 직원들의 인권 문제로 시작된 일이 정 씨의 부적절한 처신의 문제로 쟁점이 바뀌었다. 정 씨가 서울시향을 떠나게 된 것은 정 씨에게도, 서울시향에도, 그를 좋아하는 음악 팬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