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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가야 내가 산다

입력 | 2015-12-30 14:00:53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호남 출신 의원들. 김동철, 임내현, 황주홍, 유성엽 의원(왼쪽부터). 동아일보


김영삼과 김대중(DJ), 양 김이 한국 정치에 끼친 긍정적 측면은 권위주의 시절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앞장섰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제왕적 총재, 1인 중심의 보스정치, 그리고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중심의 계파정치라는 부정적 측면도 함께 갖고 있다.
‘양김시대’에는 총선 때마다 제왕적 총재가 공천에 개입해 현역 물갈이를 주도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재오, 홍준표 등 소장개혁파 인사를 주도적으로 발탁했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젊은 피 수혈’을 명분으로 이인영, 우상호, 오영식, 임종석 등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인사들에게 공천장을 쥐어줬다. 그러나 DJ 퇴임과 함께 제왕적 총재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정치권 풍경은 자못 달라졌다. 특히 총선 공천 프로세스가 확 바뀌었다. 당내 경선이 총재의 낙점을 대신했다. 예외라면 2012년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권을 휘두른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상당수 지역구에서는 경선이 이뤄졌다.

달라진 공천 프로세스낙하산식 전략공천이 상향식 공천으로 바뀐 뒤 당대표 등 지도부의 권위는 추락했다. 당 소속 의원들이 당대표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게 됐기 때문. 의원들은 당대표를 수행하며 스킨십을 넓히기보다 지역구에 내려가 당내 경선 등에서 자신을 지지해줄 사람들을 모으는 데 더 열을 올렸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소속 의원들에게는 ‘평가’라는 새로운 관문이 하나 더 생겼다. 김상곤 혁신위원회가 의결한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의 평가를 통과해야만 공천 경쟁에 나설 수 있기 때문. 현역의원에 대한 평가는 의정활동(35%)+여론조사(35%)+다면평가(10%)+당 기여도(10%)+지역구 활동(10%) 등 크게 다섯 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논란이 큰 항목은 여론조사. 당 지지율에서 개인 지지율을 뺀 결과를 평가에 비중 있게 반영키로 하면서 새정연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호남 의원들 사이에 불만이 높았다. 호남에서 다선을 기록한 한 중진의원 측은 “혁신을 앞세워 호남 현역을 배제하려는 친노(친노무현)의 음모”라고 분개했다. 호남에서 새정연 지지율은 20%대 후반을 기록 중이다. 그에 비해 전국 평균은 2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즉 정당 지지율과 현역의원 지지율을 비교하면 당 지지율이 높은 호남 의원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러나 안철수 의원이 새정연을 탈당한 이후 김동철, 임내현, 황주홍, 유성엽 등 호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탈당하면서 당에 남은 호남 현역의원들이 안도하고 있다. 하위 20%에 해당하는 호남 의원이 탈당할 경우 나머지 호남 의원들이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의 평가를 무사히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 새정연 한 관계자는 “호남 의원이 30명이라는 점에서 컷오프 대상자는 6명 정도”라며 “호남 의원 6명 정도가 안철수 의원을 따라나가면 나머지 23명의 호남 의원은 별 탈 없이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의 평가를 통과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호남 의원의 탈당이 소수에 머물지 않고, 반 이상이 탈당 행렬에 동참하면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개연성도 있다. 탈당파가 다수를 점하고, 새정연에 남아 ‘평가’를 기다리는 호남 현역의원이 오히려 소수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 안철수 탈당을 진앙 삼아 요동치는 호남 정치권이 어디까지 균열될까. 호남에서 시작된 현역의원 엑소더스가 호남선을 타고 수도권까지 이어질지도 변수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