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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구자룡]달라진 중국, 달라질 국제질서

입력 | 2015-12-28 03:00:00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개혁 개방의 1번지’ 광둥 성 선전의 불법 건축물 대형 산사태 사고와 대기오염으로 인한 베이징 서우두 공항의 ‘반(半)마비상태’가 중국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연말을 맞아 ‘중동 외교’의 물줄기를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22일 중국을 방문한 하이다르 알압바디 이라크 총리와 만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라크 총리의 중국 방문은 5년 만이다. 공동성명에는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관한 협력과 이라크 경제 재건, 에너지 협력이 포함됐다.

23일에는 왈리드 무알림 시리아 부총리 겸 외교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24일 무알림 부총리와 만나 시리아에 4000만 위안(약 72억 원)의 인도적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왕 부장은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시리아지원그룹(ISSG)’ 3차 외교장관 회의에서 “시리아의 정부 및 반대 세력 대표들을 중국으로 초청하고 싶다”고 밝혔다. 베이징에서 시리아 내전 평화협상이 진행되면 그동안 뒷전에 밀려 있던 중국의 역할과 위상은 크게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1월에는 시 주석이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처럼 중국의 적극적인 ‘신(新)중동정책’은 아랍의 핵심 국가를 아우르고 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패권 및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맞서는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 등 공격적 외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과 위안화의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편입을 통해 보여준 ‘금융 굴기’, 9월 3일 톈안먼 광장에서 펼친 ‘반(反)파시스트 전쟁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보여준 군사강국 선언과 공통점이 있다. 바로 ‘깨어나고 있는 사자’의 모습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3월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19세기 초 나폴레옹 황제가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 ‘깨어나면 위험하다. 잠자는 사자 중국을 흔들어 깨우지 말라’는 문구를 떠올리는 듯 “중국이라는 사자는 이미 깨어났다”고 말했다.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2010년 위안화의 SDR 편입 심사에서는 미국의 반대에 불만을 표시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올해 SDR 편입에 이어 AIIB가 25일 정식 발족함으로써 미국 금융 패권에 대한 도전은 본격화했다.

중국은 내년에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분담금의 10.29%를 부담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2위로, 유엔일반예산분담금 비율도 근소한 차로 일본에 이어 3위로 올라선다. 유엔 안에서도 중국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한나라의 명장(名將) 한신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기’ 고사가 보여주듯 실력이 부족할 때는 굴욕도 꾹 참지만, 처지가 달라지면 상응하는 대우를 요구하는 서열 의식을 발동하곤 했다. 시 주석이 23일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의 연례 업무보고용 면담에서 지난해까지와 달리 나란히 앉지 않고 테이블 중앙 상석에 앉은 것은 중국-홍콩 관계에서 ‘양제(兩制)’보다는 ‘일국(一國)’을 강조한 것이자 ‘국가주석과 지방장관 서열’을 확인한 것이다.

앞으로 국제사회에선 중국이 달라진 위상에 맞게 ‘서열 및 치수 조정’을 요구하는 것을 자주 경험하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인접국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