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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민주화 이끈 지휘거장… 쿠르트 마주어 별세

입력 | 2015-12-21 03:00:00

뉴욕필 2002년 서울공연땐 ‘붉은 악마’ 티셔츠 입고 앙코르 연주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흔히 ‘콘서트홀의 왕’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20세기 말∼21세기 초 세계사적 현장에서 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한 지휘자가 있다. 19일 미국 코네티컷 주 그리니치에서 향년 88세로 숨진 쿠르트 마주어(사진)다.

1927년 독일 브리크(현재 폴란드 브제크)에서 태어난 마주어는 환갑을 넘긴 1989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권의 ‘복 많은 마에스트로’였을 뿐이었다. 동독 최고 지도자 에리히 호네커의 총애를 받으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1989년 10월 동독 민주화의 분출점이 된 라이프치히 시위가 발생하자 마주어는 눈부신 정치력을 발휘한다. 시위대가 경찰에 쫓기는 것을 목도하고 수백 명의 시위자를 게반트하우스로 피신시킨 뒤 평화 시위를 보장하는 협상을 조율해 냈다. 이를 토대로 시위 인파는 최대 12만 명으로 불어났고 동독 전역으로 확산된 민주화 시위 끝에 베를린장벽이 붕괴한다. 이로 인해 한때 통일 독일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그는 1996년 26년간 이끌던 게반트하우스를 떠나 뉴욕 필로 옮겨갔다.

거기서 그는 9·11테러라는 또 다른 세계사적 현장을 목도한다. 그 아흐레 뒤인 2001년 9월 20일 마주어는 뉴욕 필을 이끌고 전국에 생방송된 희생자 추모 음악회를 열었다. 그가 이때 지휘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마주어 음악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평했다. 2002년 ‘아메리카 레코드 가이드’는 “쿠르트 마주어는 누구도 정복할 수 없던 뉴욕 필을 길들여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구축했다”고 선언했다.

그의 존재감은 2002년 월드컵에서도 빛을 발했다. 뉴욕 필을 이끌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말러 교향곡 1번 공연을 마친 그는 단원들과 ‘붉은 악마’ 티셔츠로 갈아입고 앙코르 곡을 연주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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