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빠지면 법안 유명무실
일본 전자업체들이 발 빠르게 산업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아베 신조 총리 체제에서 더욱 강화된 사업재편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정부는 기존 ‘산업활력재생법’(1999년 제정)의 지원 폭을 확대한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지난해 초 시행했다. 기업들이 인수합병(M&A) 등에 나설 때 관련 세금을 줄여주고 채무 보증을 제공하는 등 사업 재편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이러한 정책은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 처리를 추진하고 있지만 만약 야당의 주장대로 대기업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누더기 법안’이 돼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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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도 마찬가지다. 동국제강은 2월 자회사인 유니온스틸을 흡수합병한 데 이어 8월에는 포항 후판공장(연산 190만 t) 가동을 중단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12월 포스코특수강을 세아그룹에 매각했다. 공급 과잉으로 인한 업계 구조조정은 이처럼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철강업계는 원샷법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도산 위기에 처한 중소·중견 강관 및 합금철 업체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해 왔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발 공급 과잉과 경기 침체로 빚어진 불황을 극복하려면 기업 간 사업 재편의 ‘촉매제’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7월 국회에서 발의된 원샷법은 공급 과잉 업종의 사업구조 재편을 돕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야당이 ‘원샷법=재벌 특혜’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만약 원샷법 지원 대상에서 ‘자산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이 제외된다면 석유화학업계나 철강업계 구조조정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격론 끝에 마련한 법이 사실상 ‘유령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제조업체 5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대기업의 88.0%, 중소·중견기업의 75.4%가 사업재편 지원제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원샷법이 통과될 경우 대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법을 활용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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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drake007@donga.com·황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