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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장원재]YS와 일본

입력 | 2015-12-07 03:00:00


장원재 도쿄 특파원

최근 한 행사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오랜 친분이 있는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로부터 들은 에피소드이다. 그가 2005년경 YS를 만났을 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거론하며 “그가 앞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손을 저으며 단번에 “무리”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3년 YS를 다시 만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YS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내가 틀렸네”라며 웃었다고 한다. 그는 “얼버무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는 그런 인품의 소유자”라고 회고했다.

한편 이 행사에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로 유명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중의원 의장도 참석했다.

고노 전 의장의 아버지인 고노 이치로(河野一郎) 전 농림상은 일본 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1965년 한일협정에도 관여했다. 고노 전 의장은 “한일협정 협상 당시 김종필(JP) 의원을 만나고 온 아버지가 ‘한국에는 젊고 훌륭한 정치가가 많다. 부러운 일’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고노 전 의장 자신은 DJ와 깊은 우정을 나눴다. “DJ를 처음 만났을 때 아버지가 말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던 그는 DJ가 도쿄(東京)에서 납치됐을 때 구명을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퇴임을 앞둔 DJ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이 수술을 받은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몰래 빠져나가 서울행 비행기를 탄 적이 있을 정도였다. DJ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고노 전 의장은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자 친구를 잃었다”며 애통해했다.

한국 정치의 거인이었던 ‘3김’은 때로 일본이 마음에 안 든다며 얼굴을 붉힐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마음 맞는 정치인들과는 흉금을 터놓고 지냈다. DJ와 JP는 물론이고 재임 시절 일본의 잇단 과거사 망언에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했던 YS조차도 일본어가 유창했고 퇴임 후 재임 당시 파트너였던 일본 총리를 초청해 식사를 하곤 했다. 이는 휘발성이 강한 수많은 현안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했던 비결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선 한국 내에 일본어가 유창하거나 일본을 잘 아는 정치인들이 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만 해도 친한 일본 정치인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외부에 노출하기 민감한 내용을 조율할 막후 라인도 사라졌다. 정치인들이 인기영합적인 일본 때리기에 나설 때 “국익을 먼저 생각하자”며 다독일 사람도 이제는 거의 없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과거 한국에 최소한의 부채의식을 가졌던 일본 정치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일련의 이런 변화가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밀실에서 대일 청구권 금액을 합의한 ‘김종필-오히라 메모’ 같은 일은 생길 수 없는 환경이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으로 정점을 찍었던 한일관계가 이후 정권을 거치며 계속 악화됐다는 점은 한일 양국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협의 시스템을 아직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YS 서거 이후 일부 언론에서는 ‘거인(카리스마형 리더)이 사라진 시대에 필요한 것은 소인들의 협치’라는 표현을 썼다. 소통과 대화를 통해 집단지성을 모으고 현안을 점진적으로 풀어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지혜는 작금의 한일관계 해법을 찾을 때도 유용한 것이 아닐까. 주일 한국대사관에 차려진 YS 분향소에서 헌화를 마치고 나오며 든 생각이었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