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시기 형법과 성 통제’ 홍양희 교수 연구 발표
일제의 간통죄 도입은 기혼 여성의 성(性)을 국가가 통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은 1934년 ‘이혼고백서’에서 “정조는 개인의 선택 문제이지 강요할 것이 아니다”며 정조관념의 해체를 주장했다. 사진은 나혜석의 삶을 그린 1979년 영화 ‘화조’. 동아일보DB
○ 시작부터 사기 협박에 악용돼
간통죄는 올 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후에도 “여성과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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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가 대한민국 형법에 제정된 것은 1953년이지만 일제강점기 처음 도입된 것은 1912년 공포된 ‘조선 형사령’이다.
홍 교수의 발표문 ‘선량한 풍속을 위하여: 식민지 시기 형법과 성(sexuality) 통제’에 따르면 당시에도 간통죄를 악용한 사기와 협박 사건이 자주 벌어졌다. 1930년 황해도 해주에서는 젊은 아내를 동네 부자 아들과 간통하게 한 뒤 남편이 돈을 뜯어낸 사건이 있었다. 1929년 서울에서는 딸을 첩으로 부자에게 시집보낸 뒤 돈을 목적으로 남자를 간통으로 고소한 사건 등도 벌어졌다.
간통죄는 또 며느리와 처를 학대하거나 보복성으로 고소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홍 교수는 “이 같은 문제는 간통죄가 피해자가 고소해야 공소할 수 있는 친고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말했다.
아내를 팔아넘긴 뒤 오히려 간통죄로 고소한 사건을 다룬 동아일보 1927년 2월 2일자 기사.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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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규정 개정 주장은 도입 초기부터 나온다. 1926년 법 개정을 위한 회의 자료에는 “간통죄를 처벌해 재판 기록을 남기면 자손이 혈통을 의심하게 돼 조상과 자손의 명예를 더럽힌다”며 처벌하지 말자는 주장도 나온다.
홍 교수는 “이는 일본 정책 당국이 ‘일본 민족의 순혈 혈통 보존’에 강박적으로 집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전근대사회에서 성 통제의 대상은 주로 상층 신분 여성에 한정됐지만 일제의 간통죄 도입으로 기혼의 모든 여성의 성을 국가가 통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1950년대 퀴어 장의 변동: 여성혐오의 전이와 동성애의 범죄화’ ‘나라를 위해 죽을 권리: 병역법과 남성적 국민 만들기’ ‘탈식민 국가의 ‘국민’ 경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 ‘내선결혼(內鮮結婚)’ 가족의 법적 지위’ 등의 주제가 발표됐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