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어떤 사람이 남에게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 기르게 되었다. 강아지가 작고 귀여운 데다 새로 데려왔기에 먹을 것을 자꾸 주고 늘 예뻐하면서 쓰다듬어 주었다. 그 집에는 원래 늙은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주인의 이런 행동에 대해 속으로는 한을 품으면서도 겉으로는 자기도 그 강아지를 사랑하는 척하여(陰恨而陽愛), 볼 때마다 핥아 주고 품어 주면서 이나 벼룩, 파리 등 물것들을 잡아 주니 주인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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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늙은 개가 겉으로는 강아지를 사랑하는 척 주인을 안심시켜 놓더니 밤중에 몰래 목을 물어 죽이는 참으로 무서운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강아지 때문에 먹이도 관심도 줄어들었을 테니, 자신에게 오던 사랑을 몽땅 가로챈 강아지가 미운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지. 음모와 배신, 교활한 술수 등이 버무려진 한 편의 막장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라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조선시대 학자 윤기(尹/·1741∼1826) 선생의 ‘무명자집(無名子集)’에 들어 있는 ‘잡설(雜說)’ 중 한 편입니다. 마무리 말씀입니다.
아아, 속으로는 죽여 없애려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사랑하는 척하여 주인이 의심하지 않도록 하고, 악독한 계교를 실행한 뒤에는 강아지가 죽은 게 자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니 참으로 교활하구나. 개도 또한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夫內懷欲殺之心, 而外示憐愛, 使人不疑. 旣수其毒, 又若其死之不由於己. 狡哉! 狗且然, 人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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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화인 게 차라리 다행입니다. 그렇지만 우화는 인간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니 안심할 일도 아닙니다. 드라마도 현실도 그저 무서운 세상입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