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수당 지원 일방 발표로 서울시, 정부와 갈등 고조 서구 제도의 겉모습만 이식, 20년째 표류하는 한국 지방자치 더 큰 문제는 정치인들의 야심 정책의 갈등 국면마다 국민이 올바르게 판단… 지자체장의 자기정치 막아야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이제는 바로 그 때문에 난감해지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제 앞길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후발자의 따라잡기가 아니라 개척자의 마음자세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별생각 없이 베껴 온 제도가 우리 사회에 착근되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부작용 역시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대표적 문제가 지방자치 제도다. 1995년 지방자치를 도입했을 때는 피상적 논리로 충분했다. 어지간한 선진국에서는 다들 지방자치를 하고 있으니 우리도 지방자치를 시행해야 선진국이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지향해야 할 지방자치의 모습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방향을 정립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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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전혀 다른 토양에서 수백 년에 걸쳐 자리 잡은 제도를 달랑 이식했으니 사방이 삐걱댈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표류하는 제도의 틈새를 정치인의 이해관계가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정치적 야심이 큰 지자체장으로선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함으로써 묵묵히 이름을 만들기보다 중앙정부와 대립해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것이 남는 장사다.
지금 청년수당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시는 구직 청년에게 매달 50만 원을 지원하는 청년수당제도를, 성남시는 거주 청년에게 연 100만 원을 지원하는 청년배당제도를 발표했다. 두 계획이 포퓰리즘 사업인지는 별도의 논점이지만, 더 뜨거운 논점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관계다. 제도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복지제도를 신설할 경우 보건복지부 및 사회보장위원회와 협의해야 한다는 법 규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협의 자체를 거부하면서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감정 대결로 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갈등의 이면에는 그간 중앙정부의 청년실업 대책에 두 지자체가 가장 비협조적이었다는 점도 있다. 지자체가 전국 단위의 사업을 함께 홍보하고 그 빈틈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독자 브랜드 사업을 만들어 광고하면서 왜 중앙정부와 협의해야 하느냐고 언론을 통해 되묻는 식이다.
메르스 사태 때의 복지부와 서울시의 한심한 공방이 머리를 스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보다 각자 튀는 것을 추구하는 풍토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주소이고, 그 속에서 등이 터지는 것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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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서는 우리 스스로 장기간에 걸쳐 한국 지방자치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차분히 길을 닦는 것이 필요하다. 길 닦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번처럼 갈등이 불거질 때 언론을 포함한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내려 지자체장들의 ‘자기 정치’를 제어하고 우리 나름의 규범을 쌓아가는 일이다. 판단의 잣대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협조 지향’인지 ‘갈등 조장’인지다. 즉 국민을 중심에 두었는지, 시장 개인의 이름을 중심에 두었는지를 봐야 한다. 갈등조장형 행태가 제어되지 않고 수익률 높은 장사로 계속 구가된다면 한국 지방자치의 표류는 끝나지 않는다.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