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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기부 톡톡]동료들과 집 수리 봉사 10년… 깨끗하게 변한 집 보면 뿌듯

입력 | 2015-11-13 03:00:00

‘쓸모없다’ 자학했던 나, 시골 아이들 멘토하며 자존감 찾아




《 개인이 가진 능력을 활용해 다른 이들을 돕는 활동을 ‘재능기부’라고 합니다. 재능기부의 영역은 의료 집수리 등 전문 영역부터 강의나 글쓰기 등 지식 나눔 활동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일상을 쪼개 가며 재능을 기부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어 뿌듯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경력이 될 것’이라며 재능을 착취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재능기부를 펼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내 모든 재능을 기부합니다”

―2004년 마술을 배웠어요. 벌써 12년째인데, 2년 전부터는 복지기관에서 마술 공연도 하고 강의도 합니다. 이 프로그램이 4주 일정이고, 매주 4시간 정도예요. 대학생인 만큼 학업과 병행하기에 조금 벅차긴 하지만 그래도 뿌듯해요.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마술만큼 좋은 게 있을까요. 즐거워하는 수강생들을 볼 때면 제가 에너지를 받곤 합니다. 재능기부를 꾸준히 하고 있는 이유죠.(26·대학생)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뒤 바이올린 레슨을 하고 있어요. 지역아동센터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10년째 주말마다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죠. 2004년 태국에서 쓰나미가 났을 때 1년간 봉사활동을 갔던 게 계기가 됐어요. 그때 고아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레슨 봉사활동을 했는데, 돌아와 보니 우리나라에도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한 아이들이 많더군요. 지금 9명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중엔 6세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16세가 된 친구도 있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 때 가장 뿌듯해요. 저는 화려한 기교를 전수하기보단 아이들에게 자신감 있게 연주하라고 가르칩니다. 우수한 아이에게는 후원을 받아 악기를 선물로 주기도 하고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연습 과정을 거쳐 아이들이 무대에 선 모습을 볼 때 정말 좋아요.(31·여·바이올린 레슨 강사)

―20년 넘게 미국 생활을 하다 지난해 여름 귀국했습니다. 귀국한 지 1년밖에 안 돼서 한국 사회나 문화를 정확히 몰라요. 하지만 미국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압니다. 이것도 재능인가요? 서울시 재능나눔학교에서 6개월째 미국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해 강의하고 있어요. 미국에 가려는 은퇴자들이 많이 듣습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뿌듯해요. 한 수강생은 6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3 못지않게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알려는 열의가 넘쳤어요. 석 달 동안 한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았죠. 이런 분들을 볼 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제가 수강생들에게 배우는 점도 많아요.(44·컨설팅회사 대표)

―교회 주일학교에서 20년 넘게 교사를 하면서 구연동화를 했습니다. 그 재능을 살려 서울 종로구 어린이 도서관에서 2년째 구연동화 재능기부를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3, 4회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도서관에 있는 동화책을 골라 읽어 줍니다. 한번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 60명이 찾아왔어요. 고학년이어서 구연동화를 재미없어하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오히려 주제를 금방 파악하곤 집중해서 듣더라고요. 책을 사겠다며 스마트폰으로 사진까지 찍어 가던 아이들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54·여·협동조합 운영)



“기부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두 번꼴로 집수리·개조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직업전문학교에서 도배, 장판 등 인테리어 일을 배우면서 현장 실습을 나갔는데, 그게 계기가 돼 재능기부를 하게 됐죠. 복지관에서 어려운 분들을 소개해 주고 자재를 지원하면 우리는 집을 고쳐요. 뭐, 의지만 있다면 이 분야 사업을 하는 분은 누구나 할 수 있죠. 수리 요청이 들어오는 집들은 상태가 정말 심각해요. 집안에 쥐가 다니기도 하고, 곰팡이도 많고, 먼지가 날려서 숨이 콱콱 막혀요. 그런 집을 저와 동료들이 싹 들어내 공사하면서 ‘러브하우스’처럼 바꿔 줍니다. 동료들과 일정을 조율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만약 일거리라도 생기면 곤란하죠. 그럴 때도 우리는 자기 일을 취소하고 봉사를 택해요. 보람은 덤이죠.(53·인테리어회사 대표)

―서대문구의 한 도서관에서 50, 60대 분들에게 2년째 한자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토요일마다 있는 수업을 준비하며 생활의 활력을 되찾고 있어요. 한자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한자교육 자격증을 땄답니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우울증도 나았어요.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40대 후반이 되니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강연을 통해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됐죠. 입소문이 나서 수강생이 점점 늘었고요. 수강하는 어르신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볼 때면 정말 뿌듯하답니다.(48·여·주류판매업)

―3년째 주말마다 주요 관광지를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소개하고 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신문에서 청소년 대상 문화유산해설 교육과정 광고를 보고 신청하게 됐어요. 1년 반 동안 역사 공부를 했고, 시나리오를 써서 연습했어요. 지금은 경복궁이랑 서대문형무소에서 해설을 해요. 단청에 쓰이는 오방색이나 경복궁 근정전의 어좌 뒤에 놓인 병풍의 의미 같은 거요. 용어가 어려워 가끔 영어 단어를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답니다. 그런 저를 외국인들이 귀여워해 주시고요. 남을 도우면서 영어와 역사도 공부하고, 이색 경력도 덤으로 쌓을 수 있으니 참 좋아요.(15·중학생)

―도서산간 지역 학생들에게 학습 상담을 해 주는 ‘멘토링 캠프’에 참여하고 있어요. 벌써 3번이나 참여했네요. 보통 저는 ‘면접 멘토’를 맡아요. ‘해요체’ 말투나 불안정한 시선 처리 등을 고쳐 주고, 면접 답변과 자기소개서가 모순되는 부분들을 지적하죠. 멘토들은 언니, 오빠들이 온다는 이유만으로 반겨 줍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쓸모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멘토링을 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진 것 같아요. 제 작은 능력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뿌듯해요. 물론 캠프 기간이 1, 2주 정도 돼 다른 일을 포기하기도 했어요. 오랫동안 하던 카페 아르바이트를 관둬야 했고 과외 시간을 조정하느라 고생했어요. 그 기간에 공모전에 나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죠. 하지만 멘토링을 하면서 얻는 기쁨이 훨씬 커요.(21·여·대학생)



“재능 착취는 사절합니다”

―사회적 기업이나 비정부기구(NGO) 등 재정이 넉넉지 않은 업체들로부터 영상 제작 의뢰가 자주 들어옵니다. 좋은 취지니까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응하지요. 그런데 몸집이 큰 단체들 중 “우리와 일하는 게 좋은 경험이 될 거다”라며 가격을 심하게 깎으려는 곳이 있어요. 얼마 전에도 한 NGO는 60만 원 정도 받아야 하는 영상인데 “재능기부 차원에서 20만 원에 해 주면 안 되겠느냐”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모자라 나중엔 “카메라를 더 놔 줘라” “영상 길이를 더 늘려라”하면서 까다롭게 굴었어요. 알고 보니 NGO 자선 행사가 아닌 파티 촬영이었어요. ‘재능기부’를 악용해 ‘재능 착취’를 하려다 딱 걸린 거죠. 영상업계 쪽에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한데 참 안타깝습니다.(35·영상제작업체 대표)

―재능기부라는 좋은 취지로 무보수 봉사를 하는 사람에게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때가 있어요. 저는 캘리그래피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데, 일부 단체는 “다시 해 달라”, “이 부분은 다시 수정해 보내라” 등 페이를 받을 때보다 더 꼼꼼히 수정을 요구합니다. 보수를 준다고 하고는 연락을 끊는 단체도 있고요. 초반에는 이력을 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재능기부를 했지만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힘이 빠지죠.(35·캘리그래피 전문가)



오피니언팀 종합·임세희 인턴기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