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 기업들 ‘눈물의 사옥 처분’
실적이 악화돼 재무구조가 취약해진 기업들이 사옥을 매물로 내놓고 있다. 수조 원대 손실을 내고 구조조정에 들어간 대우조선해양 본사 사옥(서울 중구 남대문로·위쪽 사진)과 대규모 영업 손실을 본 삼성엔지니어링 본사 사옥(서울 강동구 상일로) 전경. 대우조선해양·삼성엔지니어링 제공
실적 쇼크, 재무건전성 악화 등 경영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사옥을 팔아 ‘돈줄’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사옥들은 초저금리 환경에서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고 있는 금융회사, 연기금 등 국내 ‘큰손’ 투자가들이 쓸어 담고 있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수조 원대의 손실을 내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착수한 대우조선해양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 본사 사옥과 영등포구 영등포로 사옥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남대문로의 본사 사옥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키움자산운용이 차순위협상자로 선정됐다. 매매가격은 약 1800억 원대다. 대우조선은 또 마곡산업단지에 연구개발(R&D)센터를 짓는 계획을 취소하고 2000억 원에 사들인 부지도 매각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재무구조가 양호한데도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사옥을 내놓는 기업이 늘고 있다. 초저금리 여파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삼성생명이 대표적이다. 삼성생명은 중구 세종대로 본사 사옥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동여의도빌딩’을 610억 원에 이지스자산운용에 팔았다. 서울 ‘종로타워’ ‘수송타워’도 이지스자산운용을 우선협상자로 정해 각각 3000억 원, 2600억 원에 파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울산, 경북 포항 등 지방 사옥 10여 개도 매물로 내놓았다.
매물로 나온 기업 사옥은 대체투자를 늘리고 있는 기관투자가들이 앞다퉈 거둬들이고 있다. 매물 중 상당수가 부동산펀드와 리츠에 팔렸으며 여기에 보험사, 연기금 등 국내 기관투자가는 물론이고 해외 투자자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김종윤 교보리얼코 투자자문팀장은 “사옥의 대부분이 도심의 핵심 지역에 있어 건물가치가 높고 다른 수익형 부동산보다 상태가 좋다”면서 “무엇보다 공실 우려가 적어 연 5%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정부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하면 사옥 등 부동산 자산을 처분하는 기업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자구책으로 나오는 사옥 매물이 늘면서 사옥 간접투자 시장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