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21일로 시행 1년, 성과와 보완책 점검
2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영동문고에서 아이와 부모가 책을 고르고 있다. 매출 감소로 폐업이 이어지던 중소 서점들은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고객이 돌아오고 있다며 반색한다. 서점에서 책 내용을 확인한 뒤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이른바 ‘허수 고객’이 줄고, 실제 구매 고객이 늘었다. 광명=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문체부와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정가제 1년을 맞아 준비해 온 ‘정가제 시행 1년 현황 및 대책’ 자료에 따르면, 신간 단행본 가격은 당초 예상과 달리 5.3% 하락하는 데 그쳤다. 생각만큼 책값 거품이 빠지지 않은 것 (표 참조).
반면 도서 발행 건수는 6.3%, 가구당 평균 서적 구입비가 10% 감소하는 등 정가제 이후 출판시장이 위축되고, 도서 구입비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가제 시행 1년의 명과 암, 보완책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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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동아일보가 찾은 경기 광명시 범안로 영동문고. 빌딩 지하 1층에 자리한 430m²(약 130평) 크기의 전형적인 중급 규모 서점이다. 이 서점 권순호 대표에 따르면, 도서정가제 시행 뒤 올해 1∼10월 매출은 19억8800여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7억9700여만 원)보다 약 11% 늘었다. 도서시장의 위축과 인터넷 서점의 득세로 지난 5년간 해마다 5% 이상씩 줄어들던 매출이 반등한 것이다.
같은 날 서울 양천구 목동서로 햇빛문고(280m²·약 85평)도 마찬가지. 이 서점도 매출이 최근 몇 년 사이 매년 3% 이상 감소했지만 올해는 지난해 대비 5%가량 상승했다. 중소 서점들의 연합체인 한국서점협회 최낙범 회장은 “도서정가제로 중소 서점이 생존의 발판을 마련한 것 같다. 가격보다 책의 질, 서점의 서비스를 통한 경쟁이 이뤄진다면 지역 책방문화 정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정가제의 ‘그늘’도 있다. 신간 단행본 가격이 5.3% 하락하는 데 그치면서 소비자 입장에서 정가제의 혜택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주부 최재선 씨(32)는 “정가제가 시작되면 책값 거품이 빠진다고 했는데, 거의 느끼질 못하겠다”며 “오히려 각종 책 축제에 참석해도 할인이 전혀 안 되는 등 가격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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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온·오프라인 대형 서점의 경우 정가제 시행 전보다 할인을 덜 하는 반면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넘기는 가격인 ‘공급률’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예스24의 경우 518%(93억 원) 상승했다. 교보문고 측은 “정확히 밝힌 순 없지만 할인 폭이 줄어 영업이익이 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출판사들, “완전한 정가제 필요”
전문가들은 정가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책값 거품을 더 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가제로 할인을 받을 수 없는 독자를 위해 가격을 낮춰 구매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 출판사들 사이에서도 책의 질적 경쟁을 위해 가격 할인이 없는 ‘완벽한 도서정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행본 출판사의 모임인 출판인회의가 최근 114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완전한 도서정가제 도입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60.5%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20.2%였다.
공급률의 표준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온·오프라인 대형 서점의 공급률은 책값의 50∼55% 수준인 반면, 중소 오프라인 서점의 공급률은 70∼75%에 이른다. 인터넷 서점이 힘이 세지면서 출판사들은 이곳에는 싼 가격에 납품해야 하는 실정이다. 반면 작은 서점들은 비싼 값에 책을 받아 수익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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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bluedot@donga.com·김윤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