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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재배로 경제-문화 키우자” 세계 첫 한방화장품 개발 성공

입력 | 2015-11-03 03:00:00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평전/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
<6>인삼, 아시아뷰티로 태어나다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는 개성 출신답게 인삼을 원료로 한 화장품 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1966년 개발한 세계 최초의 인삼화장품 ‘ABC인삼크림’. 아모레퍼시픽 제공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는 ‘연구실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코티분 같은 스타 화장품을 만들어 내고 나서도 끊임없이 연구원들을 만나 독려하고 함께 머리를 맞댔다. 1964년 어느 날 그는 연구원들에게 인삼 화장품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는 개성이 고향이었다. 개성은 인삼의 고장이었고, 고려 인삼의 효능이 이미 외국인에게까지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화장품 재료로 인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는 남프랑스 그라스를 여행하며 얻게 된 ‘식물 재배로 경제와 문화를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을 늘 마음에 담아 왔다.

인삼의 약효에 대한 얼마간의 지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던 때였다. 연구진은 백지 상태에서 인삼의 미용 효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인삼의 추출물이란 추출물은 모두 뽑아 효능을 연구했다. 그 결과 2년 뒤 1966년 세계 최초 한방화장품 ‘ABC인삼크림’을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었다. 인삼 특유의 냄새나 피부에 발랐을 때의 자극을 제거해 내지 못했다. 인내를 요하는 긴 연구가 다시 시작됐다. 9년째 되던 1972년, 마침내 인삼의 잎과 꽃잎에서 인삼 유효 성분인 ‘사포닌’을 함유한 추출물을 뽑아 낸다. 하지만 이 역시 그대로 화장품 원료에 사용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냄새와 자극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듬해인 1973년 연구실은 마침내 세계 최초로 인삼 사포닌을 원료로 한 화장품 ‘진생삼미’를 탄생시켰다. 이 제품은 일본과 영국, 캐나다 등으로 수출되기 시작했고, 1975년에는 고려청자를 응용한 디자인으로 용기를 바꿔 ‘삼미’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에서 선보이게 됐다. 특히 서양인들의 관심이 컸다. 해외에서의 반응을 보며 그는 식물과 자연의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인삼 화장품 개발 능력은 다양한 한방 식물로 확장됐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1987년 피부에 아름다운 눈꽃을 피운다는 뜻을 담은 ‘설화’가 개발됐다. ‘설화’는 율무, 당귀, 치자, 감초 등의 여러 한방 약초에서 효능 물질을 추출하여 만든, 제대로 된 한방 화장품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한방 화장품의 진수라 불리는 ‘설화수’를 탄생시켰다. 인삼 화장품 연구를 시작한 지 33년이 흐른 뒤였다.

33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는 끈기로 자리를 지키며 매진했던 연구원들의 열정뿐 아니라 그들을 향해 깊은 신뢰와 무한한 후원을 아낌없이 제공했던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의 기다림이 함께 쌓여 있었다.

1954년 후암동 사무실 한쪽에서 출발했던 연구실은 1978년 기흥의 태평양기술연구소로, 그로부터 15년 뒤에는 중앙연구소라 이름 붙여진 연구동으로 발전했다. 기술연구소는 1995년 기술연구원으로 또다시 확대 개편돼 오늘에 이른다. 기술연구원은 기술에 대한 창업자의 믿음이 피워낸 꽃으로 아모레퍼시픽을 움직이는 조용한 심장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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