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1조 달러’]<中>불황형 흑자의 늪
한국 산업계가 공유하고 있는 내년 경기 전망이다. 올해 ‘무역(수출+수입) 1조 달러’ 붕괴에 산업계가 긴장하는 것은 내년과 후년 수출을 이끌 주력 성장 산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3대 주요 품목별 1∼10월 수출 실적을 보면 반도체, 휴대전화 등 무선통신기기, 컴퓨터 등 3개 품목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증가하며 올해 한국 수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3개 품목도 내년이면 하향세를 보일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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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내년이면 D램 시장의 호황 사이클이 끝나고 미국 및 중국발(發) 경쟁이 한층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세계 D램시장 규모는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커지다가 올해 480억 달러(약 54조6200억 원)로 정점을 찍은 뒤 내년에는 444억 달러로 줄어든다.
한국 전자산업의 또 다른 한 축인 휴대전화는 이미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를 겪고 있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사업은 2013년을 정점으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LG전자 역시 지난해 매출액 15조 원과 영업이익 3000억 원을 돌파한 이후 줄곧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휴대전화 매출액의 90% 이상을 해외 수출로 벌어들인다.
전자산업과 함께 한국 수출을 이끌어 온 자동차산업은 올해 1∼9월 환율과 신흥국 경기 침체, 중국 업체들의 추격 등 삼중고를 겪으며 해외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1∼9월 현대·기아자동차의 해외 판매량은 495만239대로 지난해(512만6715대)보다 3.4% 감소했다. 미국에서는 엔화 약세를 등에 업은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판촉에 열을 올렸다.
▼ 9월 수출 10% 줄고 수입 23% 급감… 불황형 흑자, 원화가치 상승 악순환 ▼
한국이 겪는 불황형 흑자(경기 불황기에 수입 감소 폭이 수출 감소 폭보다 커서 발생하는 흑자)는 원화 가치 상승을 부추겨 수출을 더 어렵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9월 경상수지 흑자는 106억1000만 달러로 전달(84억 달러)보다 22억1000만 달러 늘었다. 1∼9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도 806억3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619억9000만 달러)보다 크게 증가했다. 9월 수출은 452억7000만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10.8% 감소했지만 수입은 332억1000만 달러로 23.2%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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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한국이 주력했던 가격 대비 품질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던 수출 방식이 더이상 먹히지 않고 있다”며 “값싸고 좋은 제품보다는 수요자나 수요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수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형준 lovesong@donga.com·강유현·유재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