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열병식 이후]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가 본 열병식
‘지뢰 도발’ 김영철 건재 과시… 열병식 주석단에 북한의 지뢰 도발에 책임이 있는 김영철 북 정찰총국장(오른쪽 원 안)이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해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주성하 기자
○ 허약한 병사들
열병 행사 시작 전 교도통신을 통해 북한 군인들이 행렬을 지어 행사장에 입장하는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드디어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해서인지 군인들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대열 속 곳곳에선 영양실조에 걸린 것으로 보이는 병사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키가 160cm도 안돼 보이는 병사도 적지 않았다. 북한군의 현재 상황을 백 마디 말보다 더 잘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었다. 씩씩한 열병식과는 별개로 북한군의 영양 공급이 여전히 열악하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김정은은 열병식 시작 전에 한 연설에서 ‘인민’이란 단어를 97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인민은 이번 열병식을 위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지나가는 대열마다 말해주는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꽃다발을 흔들며 지나가는 대열에서 과거처럼 눈물 흘리는 시민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 나이 든 간부들 불안에 떨 듯
이번 열병식에서 또 하나 눈에 띄었던 점은 제일 마지막 대열이 소년단 학생들이었다는 점이다. 소년단은 14세 미만의 학생이 가입하는 소년 조직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열병식에서 소년들을 동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소년들을 등장시켜 만주에서 시작된 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연설을 통해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라는 노동당의 3대 전략을 제시했는데 청년중시를 노동당 전략에 포함시킨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김정은이 자기의 나이에 맞게 노동당의 세대교체를 단행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으로 최근 ‘장마당세대’의 등장과 더불어 청년들 속에서 김정은에 대한 인기가 크게 떨어지는 것도 북한 당국이 청년 계층을 다독이고 내세워야 하는 이유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 눈길 끌지 못한 무기들
이번 열병식은 과거 북한이 진행했던 다른 열병식에 비해 규모나 장비 면에서 눈길을 끌지 못했다. 1985년 광복절과 1992년 김일성 80회 생일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이 규모와 장비 면에서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동원된 군 장비는 300mm 방사포와 미사일을 제외하면 30년 전 열병식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열병식에 등장한 무인기는 몇 년 전 김정은이 직접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모습이 공개된 바 있다. 당시에도 형태만 무인기이지 발사돼 그냥 앞산까지 날아가 들이박히는 포탄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공군이 벌인 에어쇼 역시 북한의 현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940년대 개발된 구식 야크기와 AN-2 항공기들이 노동당 마크와 70이란 숫자를 새기며 날개를 기우뚱기우뚱 흔들며 날았다. 2년 전엔 고려항공 수송기에 군용 얼룩무늬를 새로 칠해 군용기로 둔갑시키기도 했지만 이번엔 그런 성의조차 없었다. 북한 공군은 이번 열병식을 통해 에어쇼조차 할 능력이 없다는 것, 또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군용기도 거의 없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