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시작은 3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연예인들과 취재진으로 북적대는 신상품 행사에서 도망치듯 나온 업계의 몇 사람이 모였다. 그중 누군가 ‘돈벌이 말고 순전히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하면 행복하겠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해보자’는 제안에 모두가 의기투합한 것이다. 다들 일이라면 많이 끌어안고 있는 상황이었고, 각자 구호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었지만 ‘직접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해보자’는 계획 앞에서 반짝반짝 생기가 돌았다. 여기에 배우 윤소이 씨가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비타민 부족으로 시력을 잃은 어린이들이 단 4만 원으로 치료를 받아 빛을 되찾는 것을 목격하고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다 그녀는 ‘경제 선진국’인 우리나라에도 돈이 없어 시력을 포기하는 어린 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과 부끄러움 속에 세브란스 안·이비인후과병원과 함께 개인적 차원에서 바자회를 열어왔다. 윤소이 씨와 병원 측, 그리고 화장품, 패션, 베이커리업계에서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만든 계획을 마침 82주년을 맞는 여성동아 창간 기념 바자회로 발전시킨 것이다. 공식적인 행사명이 ‘여성동아와 세브란스 안이병원이 함께하는 어린이 환자 돕기 바자회’로 정해지고 여성동아가 진행을 맡긴 했지만 바자회가 열리게 된 것은 전적으로 윤소이 씨와 이름 밝히기를 사양한 개인적 박애활동가들의 힘 덕분이다.
바자회를 준비하면서 ‘박애’에도 유행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0년대 초에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거대한 자선행사가 많았는데 글로벌화한 기업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프로그램에 주력하면서 바자회 같은 ‘구식’ 활동에 쏟는 관심은 줄어든 듯하다. 유명 브랜드에서 기증품을 낸 것도 사장님들의 개인적 의지와 관계자들의 일을 넘어선 진심이 있어서 가능했다.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태어난 ‘빈민’의 쌍둥이인 ‘박애’는 17세기 초 영국 ‘엘리자베스 빈민법’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는데 요는 개인의 가난과 불행의 책임을 사회가 나눠 진다는 데 있었다. ‘빈민법’에서 ‘박애자본주의’까지 전 세계에서 다양한 법률과 운동이 생겨났지만 아이들의 병을 치료하는 일은 어떤 시대에도 사회가 나눠야 할 절박한 의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10월 3일의 구식 바자회에 새로운 관심을 부탁드린다.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