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표가 잠정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어제 “역(逆)선택과 민심왜곡을 막을 수 있겠느냐”며 5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도 “절차 면에서 당 내부의 합의 과정 없이 대표가 단독으로 결정했다는 것도 문제이고, 내용상으로도 전화 응답률이 2%도 되지 않기 때문에 대표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의원총회 3시간 전에 대통령비서실의 고위 관계자들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어제 새벽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침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총선 공천 룰이 김 대표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고 여긴 박 대통령이 ‘친박(친박근혜) 동원령’을 내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에서 “김 대표가 공천쿠데타를 하려 한다. 자기 마음대로 공천하겠다는 것인가”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어제 오후 의원총회장 안팎에선 친박계 의원들의 김 대표 성토가 이어졌다. 일부 의원 입에선 “김 대표가 자기 형제(청와대와 친박계)를 죽이기 위해 오랑캐(새정치민주연합 친노계)와 야합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나왔다.
결국 의총은 친박계의 반발 속에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수용할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특별기구를 구성해 이 제도를 포함한 공천방안을 논의키로 하는 선에서 끝났다. 김 대표가 “청와대의 지적은 응답률만 빼고 전부 틀린 말”이라면서 “청와대 관계자가 당 대표를 모욕하면 되겠느냐. 오늘까지만 참겠다”고 한 것은 공천권을 둘러싼 여-여 격돌이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청와대로선 총선 결과에 따라 국정운영에 심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당내 공천 룰 공방에 팔짱을 끼고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2012년 임기 말 레임덕 속에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했지만 2008년엔 ‘친박 학살’ 소리가 나올 만큼 공천권을 휘둘러 당시 박 대통령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때는 임기 2년차에 탄핵정국과 함께 총선을 맞아 ‘대통령당’인 열린우리당 의원을 대거 원내에 진출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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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을 둘러싼 여당의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노동개혁을 비롯한 국정 현안도 뒷전으로 밀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친노 비노 간 권력투쟁 중인 새정치연합이 “대통령은 총선 개입을 중단하라”는 비판까지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