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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이 한줄]모두 진실에 눈감은 시대… 그대, 정녕 깨어있는가

입력 | 2015-09-21 03:00:00


《 마침내 그는 라디오를 끈다. 적막 속으로 선생들의 목소리가 들어가 그의 머리 한쪽에서 울리는 동안, 반대쪽에선 기억이 말을 건다. “눈을 떠요. 그리고 그 눈이 영원히 감기기 전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걸 찾아봐요.”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1·2’(앤서니 도어·민음사·2015년) 》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 묘비 같은 네모반듯한 회색 콘크리트가 들판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잊지 않고 추모하는 ‘유대인 대학살 추모공원’이다. 마침 출장차 방문한 독일과 프랑스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앤서니 도어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읽었다.

소설은 선천적인 백내장으로 앞을 못 보게 된 프랑스 소녀와 기계에 천부적인 능력을 가진 독일 고아 소년의 이야기다.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눈이 먼 소녀 마리로르는 아버지, 작은 할아버지를 잃고 다락방에 숨어 개인 무선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며 구호 신호를 보낸다. 광부였던 아버지가 갱도에서 깔려 죽은 광산 마을을 떠나 군인이 돼 전장으로 내보내진 고아 소년 베르너는 우연히 소녀가 보낸 라디오방송을 접하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이런 가운데 나치는 눈먼 소녀가 피신한 집을 샅샅이 뒤진다. 박물관 관리자인 마리로르의 아버지가 숨겨둔 133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 ‘불꽃의 바다’ 때문이다. 소녀는 우여곡절 끝에 소년에게 구출된다. 전쟁은 사람을 바꾼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 속에서 많은 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눈을 감고, 살기 위해 더욱 잔인해졌다. 정작 전쟁 속에서도 눈을 뜨고 있었던 건 눈먼 소녀와 소년뿐이었다. 두 사람에게 전쟁은 더욱 고통스러운 현실이었지만 이들은 전쟁 속에서도 인간이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으며 모두가 보지 못하는 빛을 좇는다.

마침 귀국길에 일제강점기 일본 홋카이도로 강제 징용돼 희생된 이들의 유골이 광복 70년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설 속에 그려진 나치의 잔혹함에 제국주의 일본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아직도 진실에 눈감고 있는 일본, 그들은 언제쯤 진실 앞에 무릎을 꿇을까.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