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동북아재단 연구위원, ‘러 베베르 공사 보고서’ 공개 아관파천 당시 日공사관에 뜻 전달… 책임 추궁 함께 협상카드로 활용 피살 日人들 배상요구 포기시켜… ‘명성황후 생존설’ 러 전문도 발견
1903년 11월 28일 러시아 신문 ‘노보예브레먀’(신시대)가 명성황후 초상화(왼쪽 사진)라고 보도한 것으로 국내에는 처음 공개됐다. 같은 해 고종 즉위 40주년 축하 사절로 한국에 온 카를 베베르 러시아 특명전권공사가 본국에 보낸 ‘1898년 전후 한국에 대한 보고서’의 일부.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제공
베베르 공사는 이 보고서에서 “아관파천 직후 조선에서 불법으로 사업을 하던 일본인 약 40명이 살해당했고, 일본 공사관은 이에 대해 금전적으로 배상 해 줄 것을 요구하려고 했다”며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일본 공사관에) ‘명성황후의 살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달하자 일본 공사관은 그것을 포기했다”고 기록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배상 요구가 언급된 국내외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배상 요구 방침을 일본에 전달하는 한편 대일 협상카드로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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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명성황후’의 포스터로 사용된 서양화가 이만익의 작품 ‘명성황후’. 동아일보DB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당시 경복궁 건청궁에서 살해됐다는 게 정설이지만 피신했다는 설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3년에는 로바노프 당시 러시아 외무장관과 베베르 주한 러시아 공사로부터 “명성황후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독일과 영국 외교관들의 보고서가 발견되면서 다시금 조명받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독일과 영국 외교관들에게 명성황후 생존설을 전한 러시아 외교관들의 원래 보고 내용을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소장 한국 관련 문서를 정리한 자료집에서 찾아냈다.
1896년 1월 2일 시페이에르 주한 러시아 공사는 로바노프 외무장관에게 “한 조선인이 ‘명성황후가 살아 있고 어딘가에 숨어있는데 러시아 공사관에 은신하기를 원한다’는 소식을 고종과 베베르 공사에게 알렸다”는 내용을 비밀 전문으로 보고했다. 또 “고종은 아직 (황후가 생존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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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구위원은 “명성황후 생존설을 뒷받침한다기보다 생존설이 어디서 비롯돼 어떻게 증폭됐는지를 보여주는 문서”라고 평가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