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담화의 내용은 국내외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발표한 ‘21세기 구상 간담회’의 최종 결과보고서를 봐도 아베 담화의 내용이 전향적으로 나올지는 부정적이다. 결과보고서를 보면 일본이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우선 한국의 기대와는 달리 식민지 지배에 대한 기술이 미흡하거나 심지어는 19세기 말 러일전쟁의 승리가 많은 아시아 식민지국가에 용기를 불어넣었다고 왜곡하고 있다. 그리고 전후 70년간 한일관계 평가 부분에서 한국 정부의 대일정책은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감정에 치우친 대일정책을 추진해 한일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한국 정부가 역사인식에 대해 ‘골포스트’를 움직였다며 한국 정부가 화해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까지 서술하고 있다.
아베 담화에 현실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담화 내용에 한국의 주장이 포함될 것인지에만 온 관심을 집중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 아베 담화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대응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보고서에서도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 차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한일관계의 악화 책임을 한국 정부의 감정적 대일정책에 있다고 일방적이고 악의적으로 기술한 반면에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잘못 끼워진 단추를 다시 끼워 화해를 추진하자고 전향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결과보고서의 위원들이 누구보다도 중국의 위협을 주장하는 자들임을 감안하면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차별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데는 다분히 전략적 의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 내 분위기도 한국과 지금 타협을 하더라도 또다시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국보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우세하다. 이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입장은 한일관계에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읽는 것이다. 이 점에서 아베 담화의 내용에 매몰되기보다는 아베 담화 뒤에 숨겨진 동북아 질서에 대한 일본의 전략적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한국의 대일 외교도 동북아 질서를 염두에 둔 다차원적 방정식으로 풀어내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아베 담화 이후의 동북아 질서를 고려한 한발 앞선 전략과 동북아의 비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