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경제부장
“건설업체들이 1970년대부터 중동에 나가 외화를 벌어들이고, 경부고속도로 등을 세워 사회, 경제 발전에 기여한 거 잘 아시죠. 앞으로 드라마 만들 때 건설업체의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부각해 주십시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에이, 그러면 아무도 안 봐요.” 일반인의 머릿속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뿌리 깊게 각인된 건설업체를 긍정적으로 표현해 봐야 득 될 게 없다는 뜻이었다. A 사장은 이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 정부 때 담합으로 이들이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건설사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정부는 대형업체들은 입찰에 무조건 참여하라고 압박했습니다.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 등의 공사대금을 70% 수준으로 후려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위장된 대운하 사업’이란 비판여론 때문에 재정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겠죠. 그래서 ‘아는 선수가 더한다’는 말이 나왔어요.” 정권의 압력으로 입찰에 참여했고, 손해를 줄이려고 어쩔 수 없이 담합했다는 주장이다.
건설업체들은 담합 사실을 순순히 인정한다. 78개 건설사, 상위 100개 중 53개 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 혐의로 적발돼 과징금 등 처벌을 받았다. 과징금 규모만 총 1조3000억 원에 육박한다. 설사 돈을 벌었더라도 대부분 또는 그 이상 토해 냈다는 뜻이다.
게다가 진짜 폭탄은 따로 있다. 이들은 몇 년간 대형 국책공사에 입찰할 수 없다. 소송을 통해 미루고 있지만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 원전, 철도 등 국책사업 입찰에서 대형 건설업체가 완전히 배제되고 외국 업체와 수준 미달 업체만 참여하는 ‘입찰 대란’이 벌어진다는 게 기정사실이다. 해외공사 수주도 불가능해진다. 이미 세계 각국의 대형 공사를 따내려는 한국 업체들이 ‘공사를 끝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발주처에 소명하느라 쩔쩔매고 있고, 일부는 아예 수주를 포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광복 70주년 특별사면 방침을 밝혔다. 현 정부의 마지막 대규모 사면일 공산이 크다. 몇몇 그룹 총수들에게 관심이 집중돼 가려져 있지만 사면 여부가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 건설업계다. 대통령의 의지대로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키고, 국내외에서 청년 일자리를 더 만들어야 하는 것도 이들이다.
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