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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슬램, 안 해본 사람은 그 기분 모를 거야

입력 | 2015-07-27 03:00:00

2015년 7월 26일 일요일 비. 슬램.
#168 Testament ‘Low’(1994년)




미국 밴드 테스터먼트. 사실 이렇게 생긴 형들이 착한 거다.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제공

어떤 사람들은 인류를 둘로 나누고 그중 자신이 속한 부류를 정한 뒤, 남은 부류에 타인을 처넣고 간단히 밖에서 잠근다.

내게도 비정한 이분법 하나쯤 있다. ‘슬램(slam·콘서트장에서 관객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음악을 즐기는 것)을 해본 사람, 안 해본 사람.’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슬램은 내가 아는 가장 건전한 폭력이다. 격렬한 음악에 맞춰 낯선 사람의 몸뚱이와 내 것을 부딪치면서 나를 실감하는 것. 부닥치러 갈 때의 짜릿한 두려움, 부딪칠 때 터져 나오는 아드레날린. 공기를 메우고 출렁이는 거대한 음파 속을 표류하면서 날 둘러싼 초면들과 ‘지금 이 기분, 너도 알지?’ 눈빛을 교환하는 것. 넘어졌지만 (역시 낯선) 서너 명의 우호적인 손길에 이끌려 툭 털고 일어설 때의 동료의식. 헤드뱅잉이 외로운 사색이라면 슬램은 치열한 토론. 이건 거의 평화의 싸움박질.

독백에 익숙해 있던 난 2007년에야 처음 그 토론을 경험했다. 그해 여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섭씨 30도쯤 되던 땡볕 아래. 메인 무대 앞쪽에서 이미 관객 50여 명이 땀범벅이 돼 크래쉬의 음악에 맞춰 서클 핏(circle pit·슬램을 위해 관객이 즉석으로 만드는 원형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어 미국 메탈 밴드 테스터먼트가 등장하자 분위기는 절정. 이거다 싶었다. 첩보영화 속 비밀요원처럼 난 군중을 헤치고 서클 핏에 다가갔다.

에헴. 이분법 메탈 꼰대로서 잠깐 잔소리. 어째 요즘 록 페스티벌엔 인스타그램을 위한 출연진만 가득한 것 같구나. 관객들도 멋진 장면이 나올 때 휴대전화 카메라나 머리 위로 들어올리기 바쁘고. 안산M밸리 록 페스티벌(24∼26일)이 끝나간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8월 7∼9일)이 남았다. 다시 슬램을 하고 싶다. 소리의 면도날이 진눈깨비처럼 흩날리는 날에.

그 운명의 날. 서클 핏에 도달하자마자 난 슬램의 무아지경을 맛봤다. 10분쯤 지났을까. 급기야 뭔가에 홀린 듯 난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에 올랐다. 아니, 체중이 족히 120kg은 나가 뵈는 미국인 덩치의 등에 올라탔다. 난 곧 관객들의 머리 위를 떠다니기 시작했다. 낮게 조율된 전기기타의 반복악절이 육중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Low’가 때마침 터져 나왔다.

SNS에 올렸냐고? 그 장면을 난 내 휴대 눈 카메라로 찍어 평생 지워지지 않는 뇌 디스크에 업로드해 뒀다. 순간의 파란 하늘. 그 위를 걷는 나의 두 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