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장원급제는 어떤 시험에 합격한 것을 말하는 걸까.
고려, 조선시대 최고의 국가 고시였던 문과(대과)에서 ‘갑과(甲科) 제1인’(수석)으로 합격한 것이 장원급제다. 조선 왕조 500년 사에서 장원급제자는 700여 명에 불과하다. 장원급제자의 답안은 무엇이 특별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소장한 시권(試券·답안) 300여 점 중 대책문(對策文)을 중심으로 ‘시권, 국가경영의 지혜를 듣다’ 전시를 11월 29일까지 열고 있다. 이 전시에 등장한 시권을 통해 장원급제의 비결을 살펴봤다.
●성역 없는 비판의식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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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1629~1703)이 1660년 현종 즉위 기념으로 시행된 대과에서 내놓은 답이다. 시제(試題)는 국가의 재정정책과 관련된 것이었다. 박세당은 왕실의 재정 간섭을 차단할 것을 주장했다. 임금이 언짢아할 수 있는 답이었지만 장원급제했다. 눈치 보지 않는 ‘소신 답안’이 주효했던 것.
김학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학자료연구실장은 “당시 조선 최고의 경제학자 김육 밑에서 배운 허적이 당시 시험관이었다”며 “허적은 남인이었지만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정파를 초월했고 서인인 박세당을 장원으로 뽑았다”고 말했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라
예나 지금이나 ‘이 문제가 왜 나왔나’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공민왕은 즉위 9년(1360년) 문과 시험을 연다. 문제는 “태공망(太公望) 사마양저(司馬穰¤) 손빈(孫賓) 오기(吳起) 공명(孔明) 이정(李靖) 등의 병서 중 어떤 책이 핵심적이며, 치란(治亂)에서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쓰는 도리의 요점은 무엇인가?”였다. 홍건적 등의 침입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공민왕의 고민이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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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에 민감하라
“신이 국도(國都·한양)에 들어오던 날에 사람들에게 급선무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그것은 오직 도적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윽고 전하의 물음을 받드오니 또한 ‘도적을 다스림’이라는 물음이셨습니다.”
조선 숙종 16년(1690년) 문과 식년시에 응시한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 선비 조덕순(1652~1693)의 답안 첫머리다. ‘도둑을 다스리는 방책’이 시제였는데 이는 조덕순이 한양에 시험 치러 올라온 뒤 주민들에게 이미 그 심각성을 들은 문제였다. 그는 교화와 어진 정치를 강조하는 답변으로 장원 급제했다. 백성들의 여론에서 예상 문제를 찾으려 했던 작전이 성공했던 셈이다.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78)은 “과거에서는 1차에서 경전, 2차에서 그를 응용한 작문 시험을 본 뒤 3차에서 정책 입안 능력이 있는지를 봤다”며 “지금으로 치면 ‘메르스 방지책을 논하라’ 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내 인재를 선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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