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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7월 7일
한국 대중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서태지(사진).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을 이끌며 나타난 그는 당대 대중문화계는 물론 전 사회적인 혁신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로 이전보다 훨씬 친근한 모습으로 팬들 가까이 서 있는 그가 8월 한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선다. 1980년대 시나위의 멤버 출신인 그의 음악적 고향 역시 록음악이다.
1998년 오늘, 서태지가 록음악을 들고 격렬한 논쟁과 함께 돌아왔다. 온전히 혼자 작업한 새 앨범 ‘Seo Tai Ji’를 이날 발표했다. 1996년 1월 말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격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난 지 2년 6개월 만이었다.
‘Seo Tai Ji’에는 타이틀곡 ‘테이크 투’를 비롯해 모두 9곡이 실렸다. 얼터너티브 록이 주조를 이룬 앨범에는 ‘테이크 원’ ‘테이크 포’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번호를 내건 제목의 곡들도 담겼다. 서태지는 삼성영상사업단을 통해 “‘테이크 투는 일부 권력층 혹은 힘 있는 자들을 꼬집으면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갈등 등 여러 문제가 뒤섞인 가운데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는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또 ‘테이크 원’은 인류 탄생에 얽힌 외계유입설을 소재로 삼았고, ‘테이크 포’는 자살에 대한 생각과 함께 진정한 행복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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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쟁 속에서 서태지는 귀국하지 않은 채 음반만을 내고 정식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컴백’이라는 의미도 여전히 논란으로 남는다. 당시에도 이 앨범을 통해 서태지가 은퇴를 번복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도 이어졌다. 서태지는 언론 서면인터뷰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휴식이 필요했다”면서 “음악을 무작정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작은 보답이다”고 밝혔다.
이 같은 서태지의 힘은 여전히 컸다. 삼성영상사업단은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앨범 사전 예약주문제를 실시했다. 또 일련번호를 넣은 홀로그램을 표지에 붙이고 반투명 블루톤 케이스로 포장했다. 모두 불법복제 음반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음반은 모두 100만여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과연 서태지는 서태지였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