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봇대회 1위, 오준호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
최근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우승한 ‘팀 카이스트’를 이끈 오준호 교수는 “물에 잠겨 있는 스펀지처럼 한 분야에 푹 빠져있어야 최고가 될수 있다”고 말했다.
‘차량 하차’ 미션을 수행중인 휴보. 카이스트 제공
오 교수는 최근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하는 재난대응로봇들의 경연인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에서 최종 우승한 ‘팀 카이스트’의 수장으로 2004년 국내 최초로 두발로 걷는 인간형 로봇 ‘휴보’를 개발한 인물. 이번 대회에서 휴보는 차량 하차, 장애물 치우기, 밸브 잠그기 등 8가지 과제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수행해 로봇 강국인 미국, 일본 등을 물리치고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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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재밌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영재란 무엇일까? 오 교수는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고 답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해당 분야의 창의적인 영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 우승한 휴보 역시 이런 문답 끝에 탄생했다. 2013년 대회에 참가한 휴보와 달리 올해 휴보는 무릎 부위에 바퀴를 달았다. 이동할 때 무릎을 꿇고 바퀴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한 것. 휴보가 경사로에서 이동할 때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현상을 보완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였다.
“휴보가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선 잘 넘어지는 인간형 로봇의 단점을 극복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손을 이용해 사족보행을 할까, 변신형 로봇을 만들까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다 해결책을 찾은 겁니다.”(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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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높이뛰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7세 아이가 평균적으로 80cm 높이의 바를 넘을 수 있다고 한다면 1m를 넘으라고 강요하는 게 조기교육입니다. 한 살 더 먹으면 자연스럽게 넘을 수 있는 높이를 미리 넘으라고 하니 아이가 힘만 들고 좌절감만 커질 뿐이죠.”(오 교수)
“요즘은 본인이 관심만 있다면 인터넷으로 관심분야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해외에 나가 공부할 수도 있는 ‘기회의 과잉’ 시대에요. 영재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엔 몰두하는 데 반해, 하기 싫은 건 잘 안하는 특징이 있지요. 그러니 부모가 억지로 이곳저곳 끌고 다니기보단 스스로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게 좋습니다.”(오 교수)
우승을 차지한 휴보(오늘쪽)와 팀 카이스트의 모습. 카이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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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로봇을 만들지를 정하는 거예요. 가령 인간형 로봇을 만든다고 하면 힘이 센 로봇을 만들지, 빠른 로봇을 만들지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야 하지요. 그러려면 평소 ‘어떤 기능을 가진 로봇이 필요하다’, ‘이런 기능을 로봇에 반영하면 좋겠다’ 등 로봇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해야 하지요.”
실제로 오 교수는 공연을 보면서 ‘무대 자체가 공중을 날아다니게 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한 끝에 ‘듀얼 크레인’이라는 무대장치를 만들었다.
듀얼 크레인은 크레인 두 대를 연결한 무대장치. 두 개의 거대한 팔이 달린 하나의 로봇이나 마찬가지다. 얼핏 보기엔 건축용 크레인처럼 생겼지만 3개의 관절로 이뤄져 있어 회전과 이동이 자연스럽다. 동작이 부드럽다보니 크레인에 탑승한 가수가 흔들림이나 충격을 덜 느낄 수 있다.
오 교수는 “‘물에 잠겨 있는 스펀지’가 돼라”고 했다. 한 분야에 푹 빠져 있어야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분야를 폭넓게 아는 것도 좋지만 그 깊이가 얕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 대회에서 휴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많아요. 우선은 휴보가 어떤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또 현재는 문을 여는 데만 5분이 걸리는데 이를 단축하려는 노력도 해야 하고요. 끊임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답니다.”
대전=글·사진 윤지혜 기자 yo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