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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박인호의 전원생활 가이드]‘자연의 친구’ 사귀기, 그 즐거움과 교훈>

입력 | 2015-06-17 03:00:00


암꿩 한 마리가 새끼를 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보호색에만 의지한 채 무방비 상태로 알을 품고있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도시를 내려놓고 강원도 홍천 산골로 들어간 2010년 가을, ‘그’를 처음 만났다. 이사한 지 며칠 지나 집 주변의 밭을 둘러보던 중 갑작스럽게 맞닥뜨렸다. 조금 거리가 있어서일까. ‘그’는 경계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필자를 바라보았다. 다름 아닌 꿩이었다.

이렇게 필자와 꿩의 인연은 시작됐다. 꿩이 노니는 땅을 인생 2막의 터로 선택했다는 것은 행운이다. 풍수에서 꿩은 본능적으로 명당을 찾아내는 새로 불린다. ‘명당 새’에 대한 필자의 높은 관심과 배려는 자연스레 둘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으로 이어졌다.

물론 위험한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따금 들고양이와 매의 습격을 받을 때, 기겁한 꿩들은 “꿕꿕” 큰 비명을 내지르며 푸드덕 날아 도망친다. 하지만 평소에는 수려한 외모의 수컷(장끼)이 몇 마리의 암컷(까투리)을 거느리고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곤 한다.

실은 꿩에게 가장 위험한 ‘천적(?)’은 사람이다. 2012년 1월 초순, 필자의 집 마당에서 “탕!”하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들짝 놀라 창밖을 내다보니 한 사냥꾼이 꿩들을 향해 마구 총질을 해대고 있었다. 마을 주변 사냥은 당연히 금지돼 있는데도 말이다. 큰 수난을 겪은 꿩들은 이후 하나둘 떠나버렸다.

한동안 꿩들이 사라진 집과 밭 주변은 뭔가 허전하고 스산함마저 느껴졌다. 산비둘기가 대신 무리를 지어 살았지만, 이전에 꿩과 나누던 일종의 교감은 이뤄지지 않았다.

꿩은 연중 우리 곁에 머물러 사는 텃새 중 하나다. 그래서 예로부터 설화 소설 판소리 등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꿩 서방’ ‘서울까투리’ 등은 꿩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좀 엉성하고 모자란 듯한 사람에게 갖다 붙이는 '꺼벙이'란 별명도 실상은 꿩의 새끼를 일컫는 '꺼병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각종 설화에 등장하는 꿩은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아는 보은의 새로 그려졌다.

필자 가족의 기억 속에 조금씩 잊혀 가던 꿩들이 다시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해 12월 겨울이 되어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한층 더해진 듯했다. 그래도 다시 찾아와주니 얼마나 반가운지!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공존하는 관계까지 다시 복원이 됐다. 특히 최근의 한 ‘사건’은 이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됐다.

때 이른 무더위에 필자는 땀을 훔쳐가며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따고 있었다.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발밑을 내려다보곤 깜짝 놀랐다. 발 딛고 선 곳 바로 옆에서 암꿩 한 마리가 땅에 배를 댄 채 숨죽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모르고 밟을 뻔했다.

그러나 필자의 놀란 움직임과 시선에도 암꿩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그렇지만 그 눈과 표정에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처음엔 뱀에 물린 것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새끼들을 부화시키기 위해 알을 품고 있었다.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의 목숨은 돌보지 않는 꿩의 지극한 모성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다음 날 둘째딸(19)과 함께 생사를 초월한 꿩의 모성애를 재확인했다. 아마도 둘째딸은 호기심 이상의 큰 교훈을 얻었으리라.

사실 꿩은 무려 20여 일 동안 보호색에만 의존한 채 무방비 상태에서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시킨다고 한다. 되돌아보면 그 기간 필자의 예초기가 꿩의 둥지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간 절체절명의 위기상황도 있었다(다만 필자가 몰랐을 뿐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들고양이와 뱀들의 위협은 또 어떤가.

다행히 닷새가 지나자 어미 꿩은 무사히 새끼들을 부화시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암꿩의 모성애를 지켜본 그 기간, 세상은 메르스와 ‘신생아 시신 택배’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가끔 귀촌해서 전원생활을 하는 이들 가운데는 “너무 심심하고 심지어 외롭다”고 토로하는 이도 있다. 이런 ‘자연의 친구’를 사귀어 보면 어떨까. 이들은 비단 꿩 등 동물만이 아니다. 식물도, 작물도 다 ‘자연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얻는 즐거움과 교훈은 그 얼마나 값진가. 암꿩의 지극한 모성애처럼 말이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