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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우리 주변엔 실패를 이겨내려 애쓰는 누군가가…”

입력 | 2015-06-17 03:00:00

새 장편 ‘선의 법칙’ 펴낸 소설가 편혜영
전작들이 절망에 이르는 과정이라면 신작은 절망 헤어나려 노력하는 모습
몇년새 동인-이상-현대문학상 수상… 운이 쌓일수록 빚도 늘어나는 것 같아




  《 ‘전혀 다른 새로운 소설!’ 소설가 편혜영(43)의 새 장편소설 ‘선의 법칙’ (문학동네·사진)의 띠지에 적힌 문구다. 소설을 여러 번 읽은 편집자가 독자에게 읽히고 싶어 고른 문구일 터이다. 1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등단 15년 차 작가가 이전과 전혀 다른 소설을 쓸 수 있을까. 》


새 장편소설 ‘선의 법칙’을 출간한 편혜영 소설가를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선의 법칙’이란 제목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점처럼 있지만 나름의 궤적을 그리다가 만나기도 하고, 다시 희미하게 헤어지기도 하는 인물들 의 모양을 떠올릴 수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제게 붙은) ‘혈흔 낭자’ ‘그로테스크’ ‘엽기’ 인장(印章)에 익숙한 독자에겐 낯선 소설이에요. 예전 소설이 절망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그렸다면, 이번 소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삶을 조금씩 연장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려져요. 소설 시작점이 다른 셈이죠.”

소설 속 주인공은 윤세오와 신기정, 둘이다. 윤세오는 가스 폭발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불법 다단계에 빠져 모든 것을 잃은 딸을 조건 없는 애정으로 품은 아버지였다. 세오는 아버지를 괴롭혔던 이수호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기정은 이복동생 하정이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녀는 동생의 휴대전화 발신 기록을 좇아 하정의 발자취를 더듬기 시작한다. 장마다 두 사람의 궤적이 번갈아 진행되며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함께 연결되어 있던 시절에는 그들도 차마 몰랐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 몇 년 후 외로이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 누구도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120쪽)

편혜영 소설가의 서명과 글씨체는 멋스럽기로 유명하다. 독자와의 만남에서 서명을 해주면 “글씨체가 예쁘다”는 칭찬이 주를 이룬다고. 더 많은 독자들과 캘리그래피 같은 손글씨를 공유하자는 뜻에서 손글씨 인사를 부탁했다.

띠지의 또 다른 문구는 ‘생의 마지막 순간 보내온 간절한 발신음’이다. 편 씨는 독자에게 어떤 발신음을 보내고 싶었을까. 그는 “등장인물들이 고독하게 인생에서 큰 실패를 한 것 같지만, 실패의 순간에도 끝이라 생각 않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우리 옆에 누군가는 실패를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고, 그런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2011년부터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편 씨는 민망한지, 여러 차례 답을 부탁받고서야 짧게 답했다. “가진 운의 총량이 있다면 한 시기에 몰아서 받은 것 같아요. 운이 쌓일수록 ‘빚’도 늘어나는 것 같아 그걸 갚아 나가려면 더 열심히 소설을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재능과 성실 중에서 성실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문학적 재능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뭘 잘하는지 찾으려고 성실하게 썼다”며 “천부적으로 참신한 표현이 툭 튀어나오거나 단어를 편하게 다루지 못해 초고를 쓰고선 퇴고를 많이 한다”고 했다.

글이 쓰고 싶어 늦깎이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고, 2000년 등단 후에도 2008년까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소설을 쓴 그다. “난 한 놈만 팬다”던 영화 속 ‘무대포’ 캐릭터처럼, “오늘은 이 소설만 팬다”는 각오로 소설을 쓸 것 같아 정이 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소설을 다시 읽었다. 편혜영의 소설은 편안한 편혜영이 쓰는 불편한 소설이다. 그 사이 문학이 있기에 일독을 권한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