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를 좋아하지만 기억력 좋은 남편은 시를 잘 외운다. 5년 전이었다.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이란 비교적 긴 시를 남편에게 ‘누가 빨리 외우나’ 시합하자고 했다. 벼락치기 공부에 숙달된 내가 더 빨리 외웠지만 오래 기억하는 쪽에서는 남편이 앞섰다. 그 이후 남편은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늘 이 시를 외우곤 했다.
그렇지만 막상 이 시를 쓴 시인을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마종기 시인은 미국에 사는 분이니 더욱 그랬다. 그런데 부친인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의 전집과 자신의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을 출간하면서 이번에 고국을 방문한 것이다.
시인은 ‘우화의 강’에서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라고 했다. 웬만큼 세상을 살아본 사람은 안다. 사람을 오래 좋아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렇기 때문에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고,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그런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는 시인의 소망은 또한 우리 모두의 소망이 된다.
한 편의 시가 맺어준 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마음이 깊은 법문을 들은 뒤처럼 맑고 향기로웠다. 왜냐면 시인이 그의 오랜 친구인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과 교감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며 ‘우화의 강’에서 받은 감동을 실제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한 사람을 만나게 되기까지 과정을 보면 중간에 어느 사소한 것 하나가 틀어져도 인연으로 맺어지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며 아름다운 인연이야말로 큰 축복이다. 다시금 ‘우화의 강’을 떠올려보면서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그리워한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