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직원 울리는 블랙컨슈머
생명보험사의 콜센터 상담원 A 씨는 자주 악몽을 꾼다. 스트레스로 우울증까지 생겨 심리치료도 받고 있다. A 씨의 악몽은 지난해 걸려온 이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됐다. 상담사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된 것을 참지 못한 민원인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A 씨가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 소용없었다. 민원인은 “화가 풀릴 때까지 매주 한 번 사과 편지를 써서 보내라”고 요구했다. A 씨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매주 손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후로도 몇 차례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거나 소리를 지르는 민원인과 통화할 때마다 A 씨는 가슴이 떨리고 식은땀이 날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다.
금융회사들이 ‘블랙 컨슈머’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금융회사 직원들은 일부 고객들의 상식에 벗어나는 요구와 막말,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금융감독원의 민원발생평가와 기업 이미지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악성 민원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선량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블랙 컨슈머를 골라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도 넘은 블랙 컨슈머 백태
▼ 금융사 무원칙 대응이 ‘악성민원 악순환’ 불러 ▼
금융권 블랙컨슈머 공포
은행은 점포를 찾아와 괴롭히는 악성 민원인이 문제다. 한 은행 창구 직원은 고객이 홧김에 집어던진 수납 접시에 맞아 얼굴에 상처를 입고 성형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고객으로부터 사과는커녕 병원비도 받지 못해 치료비를 자신이 부담해야 했다.
○ 블랙 컨슈머 키우는 민원평가제도
금융회사들은 이런 블랙 컨슈머에게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 한 카드사 직원은 “악성 민원인이 돈이나 사은품 등을 요구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사비로 상품권 등을 챙겨주고 민원을 무마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금융회사들이 악성 민원인에게 무릎을 꿇는 가장 큰 이유는 금감원의 민원발생평가 때문이다. 올해 1월 금융경제연구소가 은행 콜센터와 영업창구, 민원 전담 부서 근무자 37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6%가 금감원 등 감독기관에 민원을 제기해 경영평가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악성 민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