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에이스골프’ 김영준 대표
《 두 번째 샷이 홀 가까이에 붙었다. 3m 남짓한 버디 퍼트. 브레이크가 전혀 없는 평지라 쉽게 버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똑바로 친 볼은 홀을 살짝 비켜 갔다. 아쉬움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마추어 골퍼는 이럴 때 퍼트 연습을 게을리한 탓이라고 자책하기 마련이다. 13년 구력에 ‘핸디 18’로 ‘보기 플레이어’인 김영준 씨(45)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혹시 퍼팅 스트로크가 아닌 골프공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골프공을 직접 잘라 보고 외국 전문 서적을 뒤져 가며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골프공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됐다. 김 씨가 ‘에이스골프’라는 벤처회사를 차리고 경쟁이 치열한 골프공 시장에 뛰어든 이유다. 》
호남대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에이스골프 김영준 대표가 자체 개발한 골프공을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골프공으로 인한 오류를 없애주는 것이 우리의 비즈니스”라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 자퇴했다. 4남 3녀 중 막내인 그는 같은 반 친구가 승려가 되겠다며 학교를 그만두자 그를 따라나섰다가 ‘출가(出家)’가 아닌 ‘가출(家出)’을 했다. 무작정 상경해 수세미 고무장갑 등 생활용품을 들고 팔러 다니다 가구 제조업체에 취직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자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2년 만에 독학으로 중고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러던 중 중고 골프공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해외에서는 골프공을 재활용해 사용하는 게 보편화돼 있는데 국내는 그렇지 않았다.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중고 골프공을 수거하고 판매하는 업체를 만들었다. 그는 2년 전 골프공을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하루에 4000∼5000개를 만지는데 자세히 보니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절단기로 골프공을 잘라 보니 안에 들어 있는 고무의 두께가 일정하지 않았다. ‘두께가 다르면 공이 상하좌우 중심이 잡히지 않을 것이고 굴러가다 어느 순간 한쪽으로 휘지 않을까.’
국내 서적을 뒤져 봤지만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물인 아마존을 검색하다 세계적인 골프 교습가인 데이브 펠츠가 쓴 ‘프로처럼 퍼팅하기’란 책을 봤다. 펠츠는 이 책에서 “골프공이 당신을 바보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골프공의 오류를 경고했다. 뒤틀어진 무게중심으로 드라이버샷과 퍼팅을 할 때 공이 무거운 방향으로 휘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무릎을 쳤다. 그럼 내가 무게중심이 완벽한 골프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에이스골프의 출발이었다.
“내 인생은 골프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홀인원을 한 것처럼 잘나가다가 오비(Out of Bounce)를 내고 해저드나 벙커에 빠져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김 대표는 “고달픈 인생이었지만 배운 게 많았다”며 웃었다.
○기술력 인정받아 세계시장 공략
골퍼 중에는 골프공 위에 새겨진 퍼팅라인(에임마크)을 참조해 샷하는 사람이 많다. 퍼팅라인이 골프공의 무게중심 등 밸런스를 확인해 인쇄된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골프공의 99%는 무게중심과 형태 밸런스에 상관없이 무작위로 퍼팅라인이 새겨져 있다. 김 대표는 “모든 골프공은 두 개 이상의 금형을 맞물려 제조하고 접합 부위를 완벽하게 마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완전한 구체가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똑바로 쳐도 공은 휘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호남대 골프산업학과 4학년인 그는 이 대학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디자인 개발과 특허 출원, 마케팅 등 현장 밀착형 멘토링 시스템을 통해 에이스골프는 스타 기업이 됐다.
그는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세”라며 “스윙 궤도나 얼라인먼트(정렬)가 잘못되면 아무리 무게중심이 잡힌 골프공이라도 똑바로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제가 개발한 공으로 타수를 줄였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 있죠. 이제 국내 시장을 넘어 전 세계에 진출해 한국의 브랜드 파워를 알리고 싶습니다.” 산전수전을 겪은 40대 벤처사업가의 야무진 꿈이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