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역사왜곡에 맞선 공동대응 포석? 전상국 열사는 中 공군 중위 임관… 32회 작전 수행 김원영 열사는 美 훈련뒤 중미 연합부대서 복무
중국 난징의 항공열사공묘에 있는 전상국과 김원영의 추모비. 이 묘소에 이름을 올린 160명의 중일전쟁 참전 조종사 가운데 한국인은 두 사람뿐이다. 이윤식 작가 제공
이번 행사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 한중이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과 맞물려 주목된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의 승전 70주년과 한국의 광복 7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청두 당안국(기록보관소)의 7월 전시 대상으로 선정된 전상국(위 사진)과 김원영(작은 사진)의 생전 모습. 아래는 일본 비행학교에 보관된 전상국의 학적부. 이윤식 작가 제공
김원영은 같은 황해도 출신으로 중국 공군 군관학교를 16기로 졸업한 뒤 1935년 김구 선생이 난징에서 조직한 독립군 특무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1944년 미군 비행훈련을 받고 중미 연합 항공부대에 배치됐다. 김원영은 일본 대공포에 항공기가 피격되자 낙하산으로 탈출한 뒤 강을 헤엄쳐 부대에 돌아올 정도로 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중일전쟁 말기인 1945년 3월 24일 기기 고장으로 추락해 순국했다.
난징 항공열사공묘에 이름을 올린 160명의 중일전쟁 참전 비행기 조종사 가운데 한국인은 전상국과 김원영뿐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한국인 비행사들이 중국 공군에서 일본과 맞섰다. 한국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은 중국의 타이위안(太原) 비행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다. 서왈보는 중국의 펑위샹(馮玉祥) 군벌 휘하에 들어가 항공대를 만들었고, 한국의 첫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은 윈난(雲南)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공군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20명가량의 한국인 조종사가 중국에서 일본과 맞섰다”며 “한중 학계가 양국의 공동 항일투쟁사 연구 차원에서 이들의 행적을 제대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