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성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결합상품은 몇 가지를 묶어서 팔기 때문에 저렴하다고 느끼기 쉬우며 낮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으려는 소비자들에게 유익한 선택 대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결합상품이 전면에 내세우는 혜택에는 분명 착시 효과가 존재한다.
결합상품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혜택인 가격 할인은 정말로 유익한 것일까? 패스트푸드점의 세트메뉴를 보자. 누구나 한 번쯤은 햄버거에 1000원만 더 내면 감자튀김과 콜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원의 말에 세트메뉴를 선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세 가지를 모두 구매하려던 소비자에게 세트메뉴는 분명 혜택이라 할 수 있지만 햄버거만 사려 했던 소비자는 의도하지 않던 상품을 구매하고 더 많이 지출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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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결합상품을 이용할 때 할인 혜택을 얻는 대신에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점도 간과하기 쉽다. 예를 들어 유무선 통신의 결합상품은 약정 기간이 길어지는 데다 중간에 통신사를 변경하면 결합 할인 혜택이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 계속 혜택을 받기 위해 통신사를 변경하지 못하는 ‘잠김(lock-in)’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결합상품은 시장 경쟁의 측면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시장 지배력이 높은 기업이 자사의 여러 상품을 묶어서 팔면 해당 상품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에까지도 시장 점유의 효과가 파급돼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와 같은 맥락으로 시장 경쟁을 침해하게 된다.
결합상품의 착시 효과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비자는 좀 더 합리적으로 상품을 바라볼 수 있다. 정책당국 역시 소비자에게 진정한 혜택을 줄 수 있도록 결합상품이 시장에 미칠 수 있는 효과를 명확하게 분석해서 제도의 도입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이 있다. 꼭 결합을 해야만 할인해 줄 수 있을까? 하나만 선택한 소비자에게도 조금은 싸게 팔 길은 전혀 없는 것일까? 묶어 팔기로 소비자들을 몰아쳐 가며 수익을 올릴 길만을 찾지는 않았으면 한다.
여정성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