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자활센터 카페 ‘더 마실’의 코트디부아르 출신 필로멘씨
지난달 말 서울 용산구의 카페 ‘더 마실’에서 코트디부아르 난민인 아비 지리뇽 필로멘 씨가 주문받은 커피를 만들고 있다. ‘더 마실’은 용산지역자활센터가 저소득층에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는 카페다. 용산구 제공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 숙대입구역 근처 ‘더 마실’에서 만난 필로멘 씨는 능숙하게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다. 그는 용산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카페 ‘더 마실’의 커피 맛을 책임지는 바리스타다. 2005년 코트디부아르의 종교·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건너왔고 2013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고국을 무사히 탈출했지만 타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는 녹록지 않았다. 한국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한국에 왔지만 생계를 꾸리고 아이를 키울 일이 막막했다. 필로멘 씨는 모국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이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에선 일을 찾을 수 없었다. 생활고에서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학살 트라우마’ 탓에 우울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아들 마실라(15)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것에 절망감도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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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코트디부아르는 40년간의 독재가 끝나고 선거가 실시됐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두고 북쪽 이슬람 반군과 남쪽의 기독교 정부 세력 간의 내전이 시작됐다. 내전을 피해 코트디부아르를 탈출하는 난민 행렬이 이어졌다. 최근 지중해를 건너던 난민선이 잇따라 전복돼 수백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필로멘 씨는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어느 지역에서든 사람이 죽어간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극한 고통에서 살아남으면, 극한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멍한 상태가 돼요. 아직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희망은 피어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오산중학교 축구부에서 활약 중인 아들 마실라는 장래 한국의 국가대표 선수를 꿈꾼다. 아들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이 번졌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