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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김성근, 절묘한 ‘펑고 경고’

입력 | 2015-05-06 03:00:00

3일 경기 뒤 이례적으로 나서… 간판스타 정근우 30분간 특훈
방심할 수 있는 팀 분위기 다잡기… 鄭도 감독 의중 읽고 성실히 수행
kt전 만루포 포함 4안타 화답




자존심 상했지만… 한화 정근우(아래쪽 사진)는 3일 롯데와의 대전 경기 뒤 김성근 감독의 펑고를 받으며 30여 분간 그라운드를 굴렀다. 한화 제공

김성근 한화 감독이 모처럼 펑고(수비 연습을 위해 배트로 공을 쳐주는 것)를 했다. 3일 롯데와의 대전 안방경기가 끝난 직후였다. 이날 2루수 정근우는 1회초 포구 실책으로 팀 패배의 단초를 제공했다. 김 감독의 펑고는 정근우와 유격수 강경학을 향했다.

김 감독이 시즌 중에 직접 ‘지옥 펑고’를 한 건 이례적이다. 경기가 끝난 직후로 많은 관중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어서 정근우는 팬들이 보는 앞에서 30여 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그라운드를 굴러야 했다.

대개 감독들은 선수들을 공개적으로 혼내지 않는다. 그런데 김 감독은 공개적으로 정근우를 굴렸고,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 정근우는 굴렀다. 표면적으로는 실책을 한 정근우에 대한 징벌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켜본 김 감독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김 감독의 진짜 속내는 선수단 전체에 일종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전부터 김 감독은 팀 내 스타 선수들에게 더욱 엄격했다. LG 감독 시절에는 양준혁과 이병규를 심하게 혼냈고, SK 지휘봉을 잡았을 땐 김재현을 선수단 앞에서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스타 선수들을 봐주지 않아야 선수단에 위화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김 감독의 철학이다. 난생처음 그런 대우를 받아본 스타 선수들은 엄청난 실망과 섭섭함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김 감독의 진심을 알게 됐다.

역전 그랜드슬램 한화 정근우가 5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 5회말 역전 만루홈런을 터뜨린 뒤 헬멧을 벗어 환호하는 팬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대전=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그런데 정근우는 여느 스타 선수들과는 다르다. 그는 스타 선수가 되기 전인 SK 시절 김 감독의 혹독한 조련 속에서 컸다. 투지도 좋고, 맷집도 좋다. 야구 머리도 뛰어나 김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차린다. 감독이 어떤 행동을 통해 선수단에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을 확성기처럼 확대 재생산할 줄 아는 선수다.

지난해 한화의 일본 마무리캠프 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한화의 지옥훈련 사진을 보면 정근우의 얼굴이 빠지질 않는다. 흙으로 까매진 유니폼을 입은 그는 ‘저 좀 살려 주세요’ 하는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누워 숨을 헐떡이곤 했다. 물론 훈련은 힘들었다. 하지만 약간의 ‘과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진기자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한화는 시즌 초반 선전하고 있다. 약체라는 평가를 비웃듯 5일 현재 16승 12패(승률 0.571)로 4위를 달리고 있다. 자칫 방심하거나 자만할 수 있는 성적표다. 실제 최근 들어 실책이 많아졌다. 김 감독은 바로 이때 전체 선수단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펑고를 꺼내들었고, 정근우는 그라운드를 구르며 김 감독이 자신에게 원했던 임무를 100% 수행했다.

효과는 100%였다. 그것도 바로 다음 경기에서 나타났다. 5일 kt와의 안방경기에서 정근우는 만루홈런을 포함해 5타수 4안타 4타점 4득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한화는 이날 홈런 3개로만 9점을 올리며 15-8로 승리했다.

2013년 말 정근우가 SK에서 한화로 이적했고, 지난해 말 김 감독이 한화 감독이 됐을 때 야구계에 돌았던 농담이 있다. “절(김 감독)이 싫어 중(정근우)이 떠났는데, 절이 중을 따라왔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하건 둘은 눈빛만 봐도 통하고, ‘쿵’ 하면 ‘짝’인 찰떡궁합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