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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유리-오승환과 보험소비자의 ‘안 알릴 권리’

입력 | 2015-05-04 03:00:00

사생활 기획사에 안 알릴 권리… 연예인 표준전속계약서에 보장
5년이 지난 과거의 질병 경력… 3개월이전 진단 받은 질병도
계약때 보험사에 알릴 필요없어




홍수용 기자

소녀시대 유리와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오승환이 최근 열애 사실을 인정한 것은 사생활을 ‘알릴 의무’를 이행한 것이 아니라 ‘안 알릴 권리’를 강하게 행사하지 않은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연예인 표준전속계약서에는 개인 생활을 기획사에 알리지 않을 권리가 보장돼 있다. 공개적으로 사생활을 알릴 의무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대중적 인기가 중요한 연예인과 운동선수 중 상당수가 ‘사생활을 얼마나 알려야 할까’ 고민하는 게 현실이다. 때때로 안 알릴 권리를 포기하기도 한다.

일반인도 보험 계약을 할 때면 이런 고민을 한다. 가입 전 보험사가 ‘자신의 질병이나 신상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을 보험사에 알리고 가입해야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경고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거짓말할 의도는 없지만 기억에 의존하다 보면 알려야 할 정보를 못 알리고 알릴 필요가 없는 사생활을 과도하게 알리는 실수를 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실제 많은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해 달라는 소비자에게 애초에 알릴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며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매년 이와 관련된 민원이 2000건 안팎에 이른다.

일선 보험설계사들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과거 아팠던 사실을 어느 선까지 알려야 하는지 명확히 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한다.

청약서에는 ‘최근 5년 이내 입원, 수술, 7일 이상 치료, 30일 이상 투약한 사실이 있는가’에 답하도록 돼 있다. 소비자가 5년 내 진료 기록을 병원에 일일이 물어 정확히 알렸다고 해도 찜찜함은 남는다. 예를 들어 5년 1일 전 중대 질병으로 입원한 뒤 병원에 가지 않다가 5년 1일이 지난 시점에 보험에 들면서 이 사실을 보험사에 알리지 않아도 될까?

금융감독원 보험 담당 국장에게 물었더니 답하지 못했다. ‘알릴 의무’는 피보험자(보험의 보장을 받는 당사자)가 숨질 때 그 원인이 원래 있던 질병 때문인지 규명하기 위한 것인데 불과 하루 차의 심각한 병을 알리지 않는다면 고의적 은폐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국장에게도 들었기 때문이다.

실무를 잘 아는 원희정 금감원 제3보험팀장의 해석은 이랬다. “극단적 예지만 5년 1일 전 간경화로 입원한 적이 있는 사람이 이후 병원에 가지 않다가 5년 1일이 지난 시점에 이 사실을 숨기고 보험에 든다고 해도 계약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5년 기준을 정해둔 것은 보험 계약의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인 만큼 그 이전의 질병에 대해서는 안 알릴 권리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현재의 질병을 파악하기 위한 ‘최근 3개월 이내에 의사로부터 질병을 진단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도 있다. 역시 3개월에서 하루라도 전에 진단 받은 질병은 알릴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음주, 흡연 습관은 제대로 알려야 한다. 매일 음주하고 하루 담배 한 갑을 20년 피워 온 사람이 주 1회 음주에 하루에 담배를 5개비씩 10년 정도만 피웠다고 답했다 하자. 이 사람이 간암이나 폐암으로 숨졌다면 보험사는 알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 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음주, 흡연량이 질병을 유발했다는 인과관계를 보험사가 입증하지 못하면 보험금은 지급된다.

알릴 의무 때문에 생긴 분쟁 사례를 분석하다 보면 많은 소비자가 설계사를 보험사 직원이라고 여기는 공통점이 드러난다. 설계사는 개인사업자이지 보험사를 대신해서 알릴 의무를 들을 권한이 없다. 설계사에게 구두로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말이다. 청약서에 정확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은 설계사를 보험사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이 부분은 개선돼야 할 대목이지만 당장은 소비자가 조심해야 한다.

그동안 알릴 의무에 비해 안 알릴 권리는 소홀히 취급돼 왔다. 알릴 의무는 아프거나 죽을 위험이 높은 사람을 가려 보험사를 도우려는 것이다. 반면 알릴 범위를 명확히 정해 안 알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소비자를 위한 것이다. 현재 질병은 3개월, 과거 질병은 5년 이내가 법적 기준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걸 기억하면 모호했던 안 알릴 권리의 영역이 분명해진다.

열애 사실을 인정한 유리-오승환에게는 이제부터 극히 개인적 영역을 더는 알리지 않을 권리가 생겼다. 기본적인 알릴 의무를 다한 보험 소비자도 안 알릴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