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학자 김종욱 씨, 감춰진 시와 산문 발굴 공개
시 ‘내 아내 내 누이 내 나라’가 수록된 1926년 11월 미용전문 잡지 ‘위생과 화장’ 2호 표지. 김종욱 씨 제공
‘내 아내 내 누이 내 나라’는 정지용(사진)이 1923년 1월에 쓴 시다. 시적 화자는 빼앗긴 땅에 아내와 누이를 두고 떠나는 착잡한 마음을 노래한다. ‘복사꽃처럼 피어가는 내 아내 내 누이./동산에 숨기고 가나 길가에 두고 가나.’란 부분에서 절정에 달한다. 1913년 동갑인 송재숙과 결혼한 정지용은 1923년 5월 휘문고보 졸업을 앞두고 일본 도시샤(同志社)대로의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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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검토한 정지용 연구 권위자인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고려대 명예교수)는 “정지용은 ‘사춘기를 훨씬 지나서부턴 일본 놈이 무서워 산으로 바다로 회피하며 시를 썼다’고 말할 정도로 순수시인이었다”며 “강한 남성적 이미지 속에서 청년 시절 지용의 뜨거운 혈기를 떠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꽃 없는 봄- 봄에 부치는 노래-’에선 ‘三南(삼남)에 꽃이 겨울에 피었다. 그래서 그러한지 봄이 삼월이 기울어 겨울보다도 따뜻하건만 꽃이 없다.’며 이상기후를 걱정한다. 그러면서 ‘겨울에 大邱(대구)서 사과가 열렸다한다. 금년에 사과 흉년이 질까 걱정 말라. 두 벌 사과가 여는 대구에 식량문제가 緩和(완화)될까 한다.’며 1946년 대구 쌀값 폭등을 겪은 대구의 사정이 나아지길 기대한다. 최 교수는 “서정시를 쓴 그의 내면에도 조국의 현실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 “춤은 노동자와 농민, 군인과 학생의 것”
원고지 25장 분량의 산문 ‘사교춤과 훈장’은 앞서 제목만 알려졌던 것이 이번에 내용이 공개됐다. 정지용은 광복 이후 친일파 모리배의 손으로 댄스홀이 만들어진 세태와 그곳에 모인 불량 여학생, 유한마담들을 개탄한다. 그는 “여성은 체질적으로 춤을 좋아하고 남성은 모험심이 많아 훈장을 선호한다”며 봉건적인 논조를 편다. 그는 여학생에게 “왜 봉건적 탄압을 하느냐”며 항의받은 일화도 솔직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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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내 아내 내 누이 내 나라’는 다음 달 충북 옥천군 옥천읍 정 시인 생가 일원에서 열리는 지용제에서 낭독될 예정이다. 이번에 발굴된 시와 산문은 다음 달 출간 예정인 최 교수의 ‘정지용 전집’과 문예계간지 ‘연인’ 여름호에도 수록된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