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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푸어’ 전락하는 5060세대

입력 | 2015-04-26 13:02:00

자녀 결혼 축복인 줄 알았더니…50대 직장인, 은퇴 후 자녀 결혼 비용으로 고민




결혼은 어렵다. 당사자에게도 부모에게도. 억대의 결혼 비용을 감당할 엄두를 내지 못해 자발적 비혼(非婚)을 택하거나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도 있지만, 당사자만큼이나 결혼적령기 자녀를 둔 5060세대도 결혼 비용 때문에 고민이 많다. 최근 신한은행 부부은퇴교실에 참석한 50대 직장인 4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은퇴 후 자금이 가장 많이 소요될 항목으로 자녀 결혼 비용(64% · 256명)을 꼽았다.

3년 전 아들이 결혼한 직장인 이모(53) 씨는 신부 쪽에서 당연히 남자가 집을 마련하길 기대해 20년 가까이 모은 3억 원을 아들의 아파트 전셋값에 보탰다. 그는 “아들이 나중에 (우리를) 모시고 살겠다고는 하는데 며느리 생각은 어떤지도 모르겠고, 당장 모아둔 돈이 없어 재산이라고는 살고 있는 집과 퇴직금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둘째딸이 결혼한 사업가 최모(55) 씨는 “호화 결혼식, 예단, 예물 등이 허례허식처럼 느껴져 우리 아이가 결혼할 때는 최대한 간소하게 하고 싶었으나 시댁 눈치가 보였다. 시댁과 조율하다 보니 결국 호텔에서 하객 500명 이상의 결혼식을 하게 돼 생각 이상으로 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 인생에 단 한 번 결혼이 부모 노후 망칠 수도

자녀의 화려하고 특별한 ‘하루’를 위해 노후자금을 털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고 제2, 제3금융권에서 빚을 내는 부모들도 있다. 서울 강남의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상견례를 위해 결혼식 전 강남 고급 아파트나 빌라에 단기 입주해 살다 결혼식이 끝나고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웨드에서 최근 2년 안에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5 결혼비용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신혼부부 커플당 결혼자금으로 평균 2억3798만 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비용이 평균 1억6835만 원으로 비중이 가장 컸고 예단(1639만 원), 예물(1608만 원), 예식장(1593만 원), 혼수(1375만 원), 신혼여행(451만 원)이 뒤를 이었다. 대졸 신입사원 평균연봉이 2355만 원인 걸 감안하면 자력으로는 결혼이 쉽지 않아 결국 부모에게 손을 벌리게 되는 구조다. 이렇게 올린 결혼식이 만족스러울까. 듀오웨드 조사에 따르면 기혼자의 70%는 ‘다시 결혼 준비를 한다면 비용을 최소화하겠다’고 응답했다. 가장 축소하고 싶은 결혼 준비 품목은 예단(41.3%)과 예물(18.2%)이었다.

결혼에 대한 부모들의 생각도 양극으로 나뉜다. 결혼정보업체 대명위드원의 홍유진 부대표는 “전통 방식으로 모든 걸 갖춰 결혼하길 원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당사자들이 직접 준비하고 부모는 결혼에 개입하지 않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홍 부대표는 “결혼식을 단출하게 하는 대신 신혼여행을 알차게 가는 부부도 많다. 50대 부모는 맞벌이 세대로 자녀가 한두 명인 경우가 많아 자식이 결혼할 때 집을 해주는 대신 3~5년 동안 함께 살면서 본인들은 외로움을 달래고 자식의 육아를 도와주기도 한다. 예단을 없애거나 간소화하는 등 허례허식을 줄이려는 열린 사고의 부모도 늘었다”고 말했다.

남들처럼,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깨고 소신껏 결혼한 부부는 공통적으로 “부모가 우리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했다”고 말했다.

2014년 9월 서울 성북구청에서 결혼식을 올린 직장인 한대용(29)-김빛나(28) 부부의 결혼식장에는 해바라기가 활짝 피었다. 부부는 셀프 웨딩촬영과 드레스 대여를 통해 결혼의 필수요소라는 일명 ‘스드메’(스튜디오 · 드레스 · 메이크업)를 50만 원에 해결했고, 성북구청 홀을 무료로 빌려 식비만 부담했다. 시아버지는 멋들어진 축가로 부부의 앞날을 축복했으며, 김씨는 남편이 직접 만든 해바라기 부케를 들고 행진했다. 김씨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날인데 남들처럼 지루한 결혼식이 아닌, 부부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양가 부모도 좋은 의도라며 지지해줬고, 식을 마치고도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 결혼한 김호일(36) 바른몸체형교정원 원장과 육정희(33) 아쿠아로빅 강사 부부는 알뜰 결혼식을 돕는 시민단체 무료결혼식추진운동본부(무결추)의 도움을 받아 스드메를 69만 원에 해결했다. 식장은 최소 하객 200명으로 잡고 서울 강북의 한 웨딩홀을 30만 원에 빌렸다. 예물, 예단, 폐백은 생략했다. 육씨는 “원래도 부모 도움 없이 둘이 결혼식을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무결추를 알고 저렴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웨딩플래너 없이 둘이서 결혼 준비를 열심히 했던 만큼 지금의 삶이 그 마음가짐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 막연한 상상 말고 구체적 수치 파악해야


양가 부모의 지지 속에 당사자들이 꾸리는 행복한 결혼식을 마친 한대용-김빛나 부부와 김호일-육정희 부부(아래).

신한은행은 지난해 4월 은퇴브랜드 신한미래설계를 론칭하면서 은퇴자산관리 세미나와 은퇴설계 상담을 하는 부부은퇴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과장은 “부부은퇴교실에 참석한 고객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자녀 결혼 비용과 의료비 준비가 은퇴생활에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많은 부모가 자녀가 결혼하면 막연하게 억대의 목돈이 들 것을 걱정하는데, 은퇴설계 시스템인 S-미래설계를 통해 재무설계 과정에서 해당 비용이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 언제쯤 발생하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얼마나 필요할지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부부 두 사람의 은퇴자금 규모를 감안해 예상한 자녀 결혼 비용이 적절한 규모인지도 파악하는 등 구체적으로 은퇴 이후 지출을 그려보면 노후 설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교육포럼 대표는 부모가 자식의 결혼 비용을 부담하느라 ‘웨딩푸어’가 되는 현실을 타개하려면 “부모가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며 “자식이 결혼한다고 집 사주고 전세자금 대주는 건 우리나라밖에 없다. 자식이 살 집이 필요하다면 전세자금이 아닌 1~2년치 월세를 대주고 그 기간 내 자립을 돕는 게 낫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출퇴근을 길게는 2시간씩도 해요. 국내의 경우도 서울에서 1시간 거리만 나가면 집 구하기가 훨씬 수월한데, 부모가 돈을 대주다 보니 자녀들이 직장과 가까운 곳, 시내에서만 살려고 합니다. 일단 (전세자금을 대주는 등) 자식에게 목돈이 나가면 돌아오지 않아요. 강의를 다니면서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부모를 많이 만나는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를 위해서라도 독하게 마음먹고 자녀의 자립을 도와야 합니다. 또한 목돈을 쥐고 있기보다 연금 형태로 수령하는 게 노후 설계에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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