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반둥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 위안부를 동원한 인권범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침략, 무력행사에 의해 타국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반둥회의 원칙을 언급하고 “일본은 이전 전쟁의 깊은 반성과 함께 어떤 때라도 (반둥회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국가가 될 것임을 맹세했다”고 말했을 뿐이다.
일본과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침략과 식민지배로 고통받은 한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전쟁에 나선 것을 반성하는지, 패배한 것을 반성하는 건지도 알 수 없다. 외교부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내각의 담화와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했음에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라는 핵심적 표현을 누락한 것은 깊은 유감”이라고 했으나 한국 외교가 ‘유감 표명’밖에 할 수 없는 점도 유감스럽다.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베와의 정상회담에서 “역사 문제는 양국 관계에서 중요한 정치적 기초의 원칙 문제”라고 못 박고 “일본이 아시아 주변국을 진지하게 대하고 역사를 바로 본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분명히 밝혔다.
60년 전 처음 개최된 반둥회의 참가국들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에 시달린 역사가 있다. 이 자리에서 아베가 과연 일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인정할지 관심사였으나 결국 두루뭉술하게 넘기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29일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과 8월 제2차 세계대전 전후(戰後) 70주년 담화 역시 진전된 내용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비난하는 소리가 높아지는데도 어제 일본 여야 의원 100여 명이 야스쿠니신사의 춘계 예대제에 집단 참석한 것은 우익 세력이 세계의 여론에도 귀를 막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