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아현동의 작은 행복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주민센터는 최근 심각해진 노인 고독 문제 해결책으로 ‘반려식물’ 나눠주기 행사를 시작했다. 31일 반려식물 전달식에 참여한 할머니들이 스파티필룸, 호야, 자금우, 제라늄 등 식물을 만져보면서 기뻐하고 있다. 서대문구 제공
새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작은 관목 ‘자금우’(천냥금)를 쓰다듬던 조금심 할머니(81)는 계속 이 말만 반복했다. 마치 귀여운 손주를 보는 듯했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토박이인 조 할머니는 혼자 산다.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은 모두 독립했다. 홀로 남은 뒤 정 붙일 곳 하나 없던 조 할머니는 “외로운 게 생활이 된 지 오래다”고 말했다. 이런 할머니에게 ‘엄마 미소’를 되돌려준 것은 31일 선물받은 자금우 화분 하나. 그가 사는 북아현동 주민센터는 최근 조 할머니처럼 홀로 사는 노인 100명에게 화분 하나씩을 선물했다.
북아현동은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 가운데 하다다. 요즘은 동 전체(0.46km²) 중 절반에서 뉴타운 재개발이 진행 중이라 슬럼화 현상도 심각하다. 황량한 동네에 남은 건 대부분 이주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노인들이다. 최근 동 주민센터가 파악한 홀몸노인은 2000여 명으로 동 전체 인구 중 10%가 넘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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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듯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주민센터가 화분 100개를 쉽게 확보한 것은 근처 주민들의 도움이 컸다. 천연동의 한 꽃집 주인이 지원에 나선 덕분에 시가의 70% 가격으로 스파티필룸 호야 자금우 제라늄 등 기르기 쉽고 꽃과 열매가 아름다운 식물을 구입할 수 있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70만 원 들여 화분 100개를 샀다. 적은 돈으로 홀몸 어르신 100명의 행복을 찾아준 셈이다”고 말했다.
이날 예상하지 못한 봄맞이 화분 선물을 받은 할머니 6명은 전달식 행사 내내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특히 열매가 열리는 자금우의 인기가 좋았다. 화분을 받은 이홍숙 할머니(80)는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자금우 잎사귀 밑 가득 매달린 열매를 보면 꼭 멀리 사는 아이와 손주들 같아요. 얘네(열매)라도 보고 있으면 그 애들이 조금이라도 덜 그리울 것 같아요….”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