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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찬식]횡설수설 95년

입력 | 2015-04-01 03:00:00


옛 문헌에서 횡설수설이라는 말은 고려시대 문인 이색이 정몽주를 평가한 글에 처음 나온다. 이색은 ‘정몽주는 횡(橫·가로)으로 말하나, 수(竪·세로)로 말하나 항상 이치에 맞았다(橫說竪說無非當理·횡설수설무비당리)’고 썼다. 성리학에서 횡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뜻하고, 수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시간을 의미한다. 정몽주는 현실과 역사를 꿰뚫고 있었다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의 ‘횡설수설’은 지령 100호를 맞은 1920년 7월 25일자에 탄생했다. 첫 횡설수설은 동아일보가 창간 이후 3개월여 동안 16번에 걸쳐 배포 금지를 당한 것을 겨냥해 ‘언론 자유가 참혹하게 유린당하고 있다’면서 ‘횡설수설은 도리어 이런 곳에 가치가 있다’고 적었다. 마지막 대목에서 ‘오늘은 동아일보 1백호 기념이라는 축사만 올리고 횡설수설은 잠깐 참자. 누가 좋아할지는 알 수 없지만’이라고 끝맺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횡설수설은 ‘말에 조리와 순서가 없다’는 부정적인 뜻도 있지만 본래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됐다. 조선시대 문집인 ‘소재집(蘇齋集)’에서도 횡설수설을 ‘다방면으로 논설을 펴서 깨우치고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첫 횡설수설에서 ‘오늘 횡설수설은 잠깐 참자’고 한 것은 횡설수설의 본래 뜻을 드러낸 말이었다. 당시는 엄혹한 일제 치하였다. 동아일보는 횡설수설의 서로 다른 의미를 중의(重義)적으로 사용하면서 자유분방한 필치와 폭넓은 관점을 선보이려 했다.

▷횡설수설의 비판은 신랄했다. 시작 다음 날인 1920년 7월 26일엔 조선총독부의 지방자치 방안에 대해 ‘선퇴(蟬退·매미 껍질) 같은 것이면 한약방에나 공급하라’고 질타했다. 같은 해 8월 8일 일제가 조선인 공무원을 채용하는 계획을 밝히자 그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정치를 야시(夜市·야시장) 행상의 영업술처럼 해선 안 된다’고 나무랐다. 동아일보 창간 95주년을 맞은 오늘 횡설수설이 초기의 정신을 이어 나가고 있는지 깊이 반성하게 된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각으로 현실과 역사를 마주하기 위해 다시 고삐를 바짝 조이고자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